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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06-07-23 05:16
 작성자 최고관리자
 글제목 광모재
옛날의 광주 율리, 지금의 성남 도촌동은 우리 선조 용헌선생의 산소가 있는 곳인데 사람들이 '부원군 언덕'이라 함은 향내의 사림에서 선생을 우러러 일컬음이다.
본래 산소가는 길 앞에는 신도비가 서 있는데 문충공 사가 서거정 선생이 비명을 찬하여 밝힌 것이다.
자손은 해마다 소제하고 전을 올려 5백년토록 조금도 고치지 않았다.  재실은 산소 옆에 있는데, 중종 갑술년(1515년)에 중수하였으며, 지난 갑진년(1964년)에 다시 지어 산소의 수호와 제수를 준비하는 곳이다.
 
근래에 서울 근교의 도시들이 확장되어 산림이나 언덕이며 골짜기 등이 점차 시가지로 변해가니, 우리 선조님의 묘소 역시 다른 곳으로 옮겨 모시지 않을 수가 없어, 경오년(990년) 가을에 광주 목리 산에 자좌오향으로 천묘하여으니, 그 의례는 간소하였으나 정은 더욱 간절하였었다.
이 목리의 골은 천지간의 비장지처로써 산길은 울퉁불퉁하고, 송백은 푸르르며 맑은 시냇물은 졸졸 흐르니 가히 '도시 가운데의 오지'라 할 만하다.
재실 또한 산소아래에 옮겨 지었는데 당대의 뛰어난 목수, 천 길의 좋은 재목으로 지은 새 집은 들보는 다섯이요, 시렁은 일곱이라. 먼저 여섯칸의 정침을 세우고, 서재삼간을 부설한 제, 임신년(1992년) 가을에 시작하여 갑술년(1994년)가을에 완공하였다.  기둥과 들보를 얽어매니 재실의 위용이 우뚝하도다.
종회장 영기씨가 여러 종친들과 의논하여 모두가 힘을 모아 묘전의 석물들도 차례로 모두 갖추어졌다.
 이가원씨는 구재실의 기문을 쓰고, 이우성씨는 묘비명을 짓고, 최근덕씨는 상량문을 지었으며, 편액은 구재실의 현판을 그대로 쓰니 문필까지 다 갖추어졌다.
이후에는 여러 자손들이 힘과 정성을 다하여 함께 수호함이 중요할 것이다.  종중의 의논으로 나에게 기문을 쓰라 하기에 이같이 대략을 적는다.
 
단기 4327년(1994년) 갑술 9월 상순에 후손 기태는 삼가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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