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헌공 신도비명 음기
나의 고조이신 좌의정 용헌공은 천품이 고매하였고 학문에 근원하여 나이 약관이 안되어 이미 과거에 급제하고 조우하였고 태종의 훈적에 이름이 기록되었고 재상이 된 세종조에는 태평성세를 이루었다. 그 문장과 업적은 빛나서 높게 뛰어났고 또 능히 덕을 쌓아 경사가 이어졌다.

자손이 많아서 지금에 와서는 내외 증현손이 무려 천여 인이다. 대를 이어 초선하여 청자가 조정에 가득하니 이 근래에 와서 지금까지 없었던 성함이라. 비록 여러 역사책에 기재되어 있는 것 만으로도 족히 오래 전하여지겠지만은 또한 비석을 세워 후세에 똑똑하게 보여주어야 하겠으나 지금에 이르러 백여년이 되었으나 아직까지 비석을 세우지 못하였으니 그 묘 앞을 지나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훈업의 훌륭함을 알지 못할지니 그 자손의 마음응 어떠하겠는가. 나의 증조부이신 참교공께서 슬퍼하시어 비석을 세우고자하여 달성군 서거정에게 청하여 이미 비문을 지어 받아 놓았으나 사고들이 빈번하여 비석을 세우지 못했다. 내가 항상 생각함은 고조부로부터 내게 이르기까지 이미 4대인데 천연 해 온 것이 이에 ㅇ르렀는데 내 또한 미루고 비를 세우지 못하면 대수는 더욱 멀어지게 될 것이니 비석을 세운다는 것을 가히 기약하겠는가.

1554년에 관서지방의 안렴사로 나갈 때 평산을 지나갔다. 평산은 곧 비석 돌이 나오는 곳이다. 그곳 부사 성세영과 금교찰방 안순좌는 다 고조부의 외현손이라. 그들과 힘을 같이하여 돌을 떠내고 또 각도의 수령가운데 고조부의 자손되는 분이 약간 있었는데 그들이 석공에게 주는 비용을 각각 내어주고 봉사현손 소는 그 일을 맡았다. 아아. 고조부의 무덤이 마침내 풀과 쑥 속에 묻히지 않게 되었고 덕업의 융성함이 세상에 밝게 드러나니 하늘에 계시는 고조부의 영혼을 조금이나마 위로하리라.
공사를 이미 마치고 그 입석을 하게 된 처음과 끝을 기록하여 이어지는 자손에게 보이려 함이라. 비석을 만들때 힘을 같이 한 여러 후손은 이백수십명의 직함이 원문에 기재되어 있으니 생략한다.
고손 명규 짓고 고손 택 쓰고 현손 소 감독하다.
가정 39년(1560)에 비를 세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