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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06-07-23 05:17
 작성자 최고관리자
 글제목 유허지
경남 고성군 고성읍 서외동 145번지에는 공부상 고성이씨 대종회명의로 소유권 등기가 되어 있는 대지 698평의 땅이 있는 바, 우리는 이곳을 고성이씨 遺墟라고 부르고 있다.
이 터전은 저 멀리 북쪽에 높이 솟은 천왕산의 우람한 기상을 이어 받았으며 좌우로 뻗어 내려온 산들은 여기를 겹겹으로  감싸고 안산은 낮은 뫼 솟은 봉우리가 첩첩으로 어울려서 원근의 절묘한 변화를 이루었으며 또 한쪽에는 바다로 이어진 긴 만이 와 닿앗으니 이 대자연의 조화는 실로 절묘함의 극치를 이루었다.
 
고성군지인 철성지와 고성이씨 세보, 행촌실기, 철성문고등에 기재된 내용에 따르면 시조공 휘 황께서 원래는 송도 송악산 아래에 사시다가 철령군이라는 군호를 받으시고 고성 자보포로 옮겨 사셨다는 기록이 있고 3세 경안공 휘 국헌께서 일찍이 고성 문소산에 들어가시어 글을 읽으시고 시를 읊으셨다고 하고 문소산에서 읊으신 시 한수가 전래되어 내려오고 있다.  그리고 효성이 지극하신 6세 문산공 휘진께서는 청규중덕과 직절영명을 기리던 왕의 특소도 사양하고 부모님(휘인충)을 모시고 문소산에 은거하셨다는 기록이 있고 6세 문산공과 8세 문헌공 내외분의 묘소가 고성군 회화면 봉동리 웅곡에 모셔져 있는데, ㅁㄱ민관으로 계실 때에는 이르는 곳마다 인애의 덕업을 남기시고 문하시중을 지내셨으니 고성이 배출한 고려의 명현들이었다.
 
행촌공 유허비문에 따르면 "금송곡좌우토전산택개기채식야""고성현치서문외송곡전임해안유선생고택기지 거민전설 선생세거 생장지지야"라고 되어 있으며, 또한 야로당일집의 "선조시거고성현서문외기후입송도이한양"이란 글의 뜻을 새겨 보아 송곡 좌우의 땅과 밭, 그리고 못과 해안이 모두 우리 선조의 채식지임이 분명하고, 그 옛날 야로당 휘순께서 통여에 있던 삼도수군통제사에게 서찰을 보내어 이곳 유허와 자보포 웅곡에 있는 선영의 보존관리를 당부한 일도 있으나 그 뒤 많은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천함에 따라 채식지 대부분을 망실하고그 많았던 토전산택 가운데 이제는 대지 698평의 땅만이 선조 유허로 남아 내려오고 있는바 그 땅마저 황폐된 채 방치하고 있었다.
 
고성읍 송수동에 있는 행촌 도촌 두 선조의 태지인 유허지는 우리선조의 세거지로서 우리에게는 이곳이 마음의 고향이자 우리 씨족의 발상지이다.
이 유허는 우리 선세의 여러 명현들이 학문을 닦고 덕성을 길러 장차 경국제세할 앞날을 꿈꾸시던 높은 정신이 깃들이 있는 거룩한 성지이다.  우리는 마땅히 이곳을 훌륭하게 보존하고 그 정신을 뜻깊게 받들여야 할 사명을 지녔다. 그러나 오랜 세월의 흐름에 따라 그 수호에도 험난한 곡절을 겪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 최근까지 겨우 대지만 소적한 상태로 보존되어 왔었다.  진실로 망극하기 짝이 없었다.
 
고성읍 송수동에 있는 행촌 도촌 두 선생의 태지는 예부터 용헌공의 종가소유로 되어 있었다.  목은 이색 선생이 지은 행촌 신도비문에 의하면 공민왕이 행촌공의 위대한 공덕을 사모하여 화상을 그리게 하여 행촌공의 아들 평재공에게 전하고 붕주를 하사하면서 제사를 받들도록 명하니 평재공이 읍사하고 봉행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해방이후에 고성인 몇 사람이 사적으로 천리교인에게 그 태지를 대여하여 거창한 교회당을 건축하였다.  종중에서는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 종론으로 철거를 요구하니 천리교측에서는 현행법으로 건물의 가격이 토지가격보다 많으니 태지를 양도하라 하여 철거를 거부하였다.  그에 대하여 본인이 부산지방검찰청 검사로 재직하면서 이에 대항하여 노력하고 처음으로 조직하여 선출된 고 승옥 대종회장과 당시 고성종친회장이었단 극성종친의 많은 도움으로 교회당을 자진철거 하도록 하여 조상의 유지를 완전히 복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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