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본명은 자열(滋烈)이고 생부는 동춘(東春)이며, 출계백부 동길(東吉)로 파조이신 호군공의 17세 후예이다. 공은 나주군 다시면 영동리에서 1911년 11월 14일(신해)에 출생하여 일찍 광주학생항일의거에 여파로 일경의 감시를 받자 “포호입호혈(捕虎入虎穴)”의 속담과 같이 경찰계에 투신하여 충남과 전북도경비사령부의 참모장 겸 보안과장으로 근무했으며 다시 광양과 영암경찰서장을 역임했다.
특히 대한유도회 이사와 지부장을 겸임한 유도 6단의 유단자였다. 이어 향리소재인 다문중학교(현 다시중학) 설립자요 학교장으로 후학교육에도 지대한 공헌을 남겼다. 또한 염산염업사(鹽山鹽業社)를 창업 사장으로 맹활약을 다한 실업가이기도 하다. 공은 정당과 재야구국투쟁에도 남다른 투지가 있어 민주당을 위시한 신민당 그리고 민중당 야당위원장과 중앙당무위원으로 역임 중 제5대 민의원으로 출마하여 당선의 영광을 차지한 민의 대변자로써 오문의 자랑인 동시 민주발전에 기여한 업적이 다대한 추호공은 1984년 5월 25일 노환으로 향수 73세로 타계하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