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령군용덕면죽전(慶南宜寧郡龍德面竹田)마을에서 부(父) 휘(諱) 태의(泰義) 모(母) 담양전씨(潭陽田氏) 낙봉지녀(洛鳳之女)의 장남으로 1920년(庚申)에 태어났다. 공의 호는 청공(靑空)이며 좌윤공파(左尹公波)다.
1939년에 경성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도일하여 일본정강고등학교(日本靜岡高等學校)를 이수 다시 일본동경제국대학 응용화학과 2년재학중 광복해방을 맞아 47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화공학과)를 수학했다. 이어 서울대 공과대학 전임강사로 있으면서 1950년 모교인 서울대학원을 수료하여 공학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그간 공대학장과 교학처장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1961년에 하와이대학에 유학을 거쳐 코로라도대학과 미국 뉴욕 부르클린 폴리테크연구소에 유학한 뒤 다시 부산대학교 공대학장으로 계속 4번째의 학장직에 유임됐다.
재직중 1966년 부산대학교 공학박사학위를 영획(榮獲)했으며 부산시정자문위원과 부산시문화상을 받고 1966년에 부산대학교 교수 및 학장직을 사임(辭任)하고 실업계로 진출했다.
첫 취업이 한일합섬㈜의 전무의 중책을 맡아 재직중 인하공대 화공학과 교수로 출강도 하며 마산라이온클럽회장으로서 봉사활동에 앞장 섰다. 3년간의 합섬계(合纖界)를 떠나 1979년 롯데삼강 대표이사로 취임 연이어 롯대물산, 롯데알미늄 대표이사로 맹활악했다. 이로서 상공부장관으로부터 Rotort Pouch 국내최초개발에 대한 유공으로 수상한 바 있고 저서로는 고분자화학개론(高分子化學槪論)외 다수가 있고 논문으로는 당류생성반응(糖類生成反應)에 대한 연구 외 다작을 남겼다.
특히 공께서는 우리나라 화공학계의 선구자 뿐만 아니라 산학교육의 수범자(垂範者)이다.
평소 족의돈후(族誼敦厚)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파조이신 좌윤공(휘 증)의 배위(配位)(광주정씨)묘 실전(失傳)에 대한 타성(순천박문중(順天朴門中)의 종도(鍾道))이 발견 통보해 옴으로 해서 수차에 걸쳐 의정부일대의 고총(古塚)를 더듬어 마침내 좌윤공의 배위와 13대조(준(準))와 14대조(영(英))의 실묘(失墓)를 찾아 사후대책을 위해 파종중과의 협의를 논하던 가운데 애석하게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82년9윌9일 향년 63세로 타계하다. 장례식은 가족 및 회사장으로 엄수됐고 종업원을 대표한 조사와 화공학계의 후배들의 애절한 애도사가 눈시울을 적시었다,
슬하에는 청주후인(淸州后人) 한연혜(韓蓮惠) 부인과의 사이에 4남2녀로 장남 재복은 부산대학을 졸업하고 신제주에서 삼오회관을 운영하며 차남 재덕은 연대공학석사로 대덕연구소 연구관리실장에 근무중이며 3남 재관은 동아대학교 농학과를 이수 동서식품회사에 과장으로 봉직중이며 4남 재돈은 연대 경영석사로 동아증권연구소 경제조사과 대리에 재직중이다. 그리고 장녀 위주는 부산대학교 약대출신으로 금령후인(金寧后人) 장남(章男)에게 출가, 차녀 해주는 덕성여대를 나와 진양문중(晋陽門中)의 하진철(河鎭喆)에게 출가했다.
공의 묘는 경남의령군용덕면소전리(慶南宜寧郡龍德面所田里) 후산 선영하에 모시고 청주후인(淸州后人) 한태석(韓泰錫) 선생께서 석문을 짓고 나주후인(羅州后人) 임재동(林在棟)께서 근서(謹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