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친은 1923년 계해생(癸亥生)으로 시조로부터 이십칠세손이며 사암공파(思菴公波)로 호는 우촌(于村)이다.
파주읍봉루리학동(坡州邑鳳樓里鶴洞)에서 한학자 이면규공(李冕圭公)의 차남으로 태어나 타계할 때까지 이 나라 출판과 육영에 헌신한 종친은 선린상업학교와 일본소압고등학교(日本巢鴨高等學校)를 거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영학과에서 큰 뜻을 키우고 1953년 원순희 여사와 결혼하여 슬하에는 이남삼녀를 두었다.
1951년 신구문화사를 창설한 이래 근사십 여년동안 육백여종의 양서를 간행하였다.1970년 성남시 남한산록(南漢山麓)에 신구전문대학을 설립 우리 사회가 바라는 전문인을 양성하여 산업일선에 보냄으로써 평소의 지론이던 산학협동을 몸소 실천하였고 오늘날 모두 이십이 학과를 가진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문대학으로 발전시킨 주인공이다. 우촌공은 생존시 문화출판에 기여한 공으로 서울시문화상, 한국출판문화상, 국무총리상, 문화공보부장관공로상, 경향신문양서출판상 등을 받았으며 교육사업에 끼친 공로로 중화민국문화대학에서 명예철학 박사학위를 수여받는 영예를 누렸다. 평소 신의성실과 근검절약을 생활신조로 삼고 이를 솔선수범해 온 종친이다. 그러나 국학관계의 새로운 출판기획과 평생교육사업의 기틀마련을 위해 노심초사하다가 그 뜻을 미쳐 펴지 못한채 1990년 1월5일 정선(旌善)땅 폭설리(暴雪裡)에 민속자료조사도중 교통사고로 급거하니 항년 육십칠세를 일기로 경기도 파주군 파주읍 백성리 묘소에 고히 잠들다.
우촌공의 급거 일주기인 1991년1월5일 유족을 비롯한 관계자 참석리에 묘비제막식을 엄수했다. 묘비문은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이신 장덕순 문학박사가 짓고 역시 서울대 문학박사 이응백 교수께서 글을 썼다.
27세 우촌공 휘 종익의 생전모습

신구전문대학 전경 소재지 : 성남시 단대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