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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모재 상량식 거행
  글쓴이 : 용헌공파종중 날짜 : 22-04-13 11:50     조회 : 4139    

광모재 이건 상량식이 아래와 같이 거행 되었기에 보고 드립니다.

일시 : 2022년 04. 07.
장소 : 경기도 광주시 목동 산114-1
12 : 00
  국민의례
  기념사 - 용헌종중 회장
  축  사 – 이종묵 대종회 고문, 이삼열 대종회 회장
12 : 30 - 안전기원제
  헌관 : 종손(동석)
  축관 : 이기동(행촌문화원이사장)
13 : 00 -
  상량문 봉함식 - 開土祭(이도희), 定礎式(이기호), 立柱式(이위형), 移建記(이기석),
 上樑文(이기동), 祝文(이삼열)
13 : 10 -
  상량보 상승
13 : 25
  음복 및 다과
13 : 30
  중식(관리동 식당)

참석인원 : 약70여명:종중 회장단, 사업추진위원, 경영관리위원,
          대종회회장, 고문, 도촌공파 회장, 서울청년회 회원, 범양건설, 짜올림한옥 대표 등

14 : 00 - 회장단, 사업추진위 연석 회의
15 : 00 - 경영관리위원회 회의


광모재 상량문과 이건기, 개토식, 정초식, 입주식 축문 내용도 함께 올려 드립니다.
廣慕齋移建上梁文(原文)

上古以來 國有崇祖之風 孝子衆多 年年不絶 德純業廣 有斐先祖 孝孫又衆 世世不忘 我先祖容軒先生 師事陽村 學修己安人之道 立朝後 歷任諸官 赫赫功績 不可勝言 朝廷大臣論議廢世子之際 佐太宗冊封忠寧之功 永世不忘 以情況觀之 世宗大王制作訓民正音時 密獻祖父杏村所著檀君世紀 使聖君參照古篆 其功亦不可言表 祖父杏村著述檀君世紀 孫子一十堂著述太伯逸史 先生韓國古代歷史與哲學繼諸先祖以啓後孫 其功亦至大矣 卒後葬於廣州之栗里今城南之島村 人呼爲府院君阡 蓋鄕之士林尊仰先生之念可知也 有齋於阡之左名曰廣慕齋 中宗時甲戌年重修 以後近來甲辰年更有重建 近年都市擴張 庚午年秋移窆于廣州木里山 天藏地秘之明處 移建齋於山下 到于今 後孫皆盡尊慕之情 今年爲宗中發展 又以後孫近墓之心移建齋於後面一里許 全體規模美觀亦近似矣 聊抽短韻 用助升梁 兒郞偉拋樑東 旭日照旦 與之燦爛 兒郞偉拋樑南 遠山蒼翠 善養浩氣 兒郞偉拋樑西 谷深溪淸 義氣衝天 兒郞偉拋樑北 木里氣象 咸取服膺 兒郞偉拋樑上 聳上至天 天人無間 兒郞偉拋樑下 大本深廣 萬國咸寧 伏願上樑之後 光靈益彰 芬苾罔缺 一萬年前 大韓氣象 綿綿繼之 凝集此齋 後孫承旨 再點古燈 光被四表 理化世界

          檀紀四千三百五十五年壬寅八月上旬後孫基東謹記
               

광모재이건상량문

상고 이래 나라에 조상을 받드는 풍조가 있었으니 효자가 매우 많아서 해마다 끊어지지 않았다. 덕이 순수하고 업적이 넓어 환하게 빛나는 선조에게는 효성스러운 후손이 더욱 많아 대대로 잊지 않는다. 우리 선조 용헌 선생은 양촌 권근 선생을 사사하여 자기를 닦고 남을 편안하게 하는 도리를 배우셨다. 조정에서 벼슬하신 뒤로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치시며 이루신 혁혁한 공적을 다 말할 수가 없다. 조정 대신들이 세자 양영대군을 폐할 논의를 할 즈음에 태종을 도와 충녕대군을 책봉하게 했으니 그 공을 영원토록 잊을 수 없다. 정황으로 보건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제작하실 때 은밀히 조부 행촌 선생이 지으신 단군세기를 바쳐 성군에게 옛 글자를 참조하게 하셨으니 그 공 또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조부 행촌 선생은 단군세기를 지으셨고, 손자 일십당 선생은 태백일사를 지었으니, 선생이 한국 고대 역사와 철학을 선조에게 이어받아 후손에게 전해주신 것이다. 그 공 또한 지대하다. 졸하신 뒤에 광주 율리에 묻히셨으니, 사람들이 부원군의 산소라 일컬었다. 이로써 고을의 사림들이 선생을 받들고 그리워한 마음을 알 수 있다. 산소 아래에 재실이 있었는데 광모재라 한다. 중종 갑술(1514)년에 중수했고, 그 뒤 근래 갑진(1964)년에 중건했다. 근년 도시확장으로 경오(1990)년 가을에 광주 목리산으로 이장하면서 재실 또한 산 아래로 옮겨지어 지금에 이르도록 후손들이 존모의 정을 다하고 있다. 올해 종중의 발전과 또 묘소에 가까이 가고 싶은 후손들의 효심으로 재실을 다시 후면 일 리쯤 되는 곳으로 옮겨지었는데, 전체의 규모와 미관이 근사했다. 이에 짧은 노래를 지어 들보 올리는 일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어기여차 들보를 동쪽으로 들어 올리니, 떠오르는 태양이 비추는 아침에 우리 모두 다 함께 찬란하게 빛나네. 어기여차 들보를 남쪽으로 들어 올리니, 푸르고 울창한 먼 산을 바라보며 호연지기를 잘 기르세. 어기여차 들보를 서쪽으로 들어 올리니, 골이 깊고 시내가 맑게 흘러 우리의 기상이 하늘을 찌른다. 어기여차 들보를 북쪽으로 들어 올리니, 목리산의 기상을 모두 받아들여 가슴에 담네. 어기여차 들보를 위로 들어 올리니, 위로 솟아올라 하늘에 닿아 하늘과 사람이 하나가 되네. 어기여차 들보를 아래로 던져 내리니, 큰 뿌리가 깊고 넓어 만국이 모두 편안하다. 엎드려 바라옵니다. 상량을 한 뒤에는 신령한 기운이 더욱 빛나서 향기로움 영원하기를. 일만 년 전 대한 기상이 면면히 이어져 이 재실에 응집해 있으니, 후손들은 뜻을 받들어 옛 등불을 다시 켜서 빛이 온 세상에 퍼져나가 옛날 같은 이상세계 다시 회복하기를.

          단기 4355년 임인 8월 상순 후손 기동 삼가 쓰다.



廣慕齋移建記

在昔廣州之栗里今城南之島村有我先祖容軒先生冠屨之藏而人呼爲府院君阡蓋鄕之章甫尊仰先生之謂也初墓前立神道碑文忠公四佳徐居正撰銘闡明先生之偉業矣子孫歲歲奠歸惟謹歷五百載無小改焉齋於阡之左而 中廟甲戌重修以後往歲甲辰更有重建以寓羹墻之慕焉近年畿下都市擴張山林丘壑漸進市街我先祖墓亦不免遷奉于他處庚午秋移窆于廣州木里山子坐午向之阡其禮簡而其情慽矣維玆木谷天藏地秘扶輿磅礡松栢蒼蒼淸溪涓涓可謂明區奧域矣齋亦移建于墓下世之良匠美材翼然新構五梁七架而先建正堂六間附設西齋三間壬申秋着工甲戌秋完工到于昨年子孫盡追慕之情也近來宗中元老會合謀議宗中發展之策而定移建廣慕齋於後面一里許乙未後孫百永買入山下土地丁酉後孫鍾晩樹立事業計劃己亥後孫東一得官許可後孫基錫着工於辛丑夏竣工於壬寅秋良匠利川徐昌奎美材新構六梁八架先建正堂七間又築洋式三層建物於齋東下名曰容軒館一層食堂二層管理舍及宿所三層宗員宿所廣慕齋上樑文後孫基東作之扁額仍用舊額則全體規模美觀皆近似矣自後諸子孫盡誠竭力公共守護而持續尊慕之念爲要矣宗議命余以記之遂略記此以告焉
          檀紀四千三百五十五年壬寅八月上旬後孫基錫謹記


 <광모재이건기(廣慕齋移建記)>

  옛 광주 율리(현재 성남시 도촌동)는 선조 용헌 선생의 산소가 있는 곳인데, 사람들이 ‘부원군 언덕’이라 일컬었으니, 고을의 사림들이 선생을 높이고 받들었음을 의미한다. 처음에 산소 가는 길에 신도비를 세우고 문충공 서거정 선생이 명문을 찬술하여 선생의 위업을 드러내고 밝혔다.
  이에 자손들이 해마다 정성을 다해 제사 받들고 귀의하기를 오백 년이 지나도록 변함이 없었다. 재실이 산소 아래에 있었는데 중종 갑술년(1514년)에 중수하고, 지난 갑진년(1964년)에 다시 지어 사모하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극진히 했다. 근년에 경기도 일원으로 도시가 확장됨에 산림과 골짜기가 점차 시가지로 바뀌어 우리 선조의 산소도 다른 곳에 옮겨 모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경오년(1990년) 가을 광주 목리산의 자좌오향(子坐午向)으로 된 언덕에 이장하였으니, 의례는 간소하였으나 마음은 애통했다. 그러나 오직 이곳 목리골은 천지간의 비장지처로 산세가 감아 돌아 기운이 가득하며, 송백이 푸르고 맑은 시냇물이 졸졸 흐르니 명당 중의 명당이라 할만하다.
  재실을 산소 아래에 옮겨 지었는데, 뛰어난 목수가 좋은 재목으로 멋진 집을 지으니, 들보가 다섯이고 시렁이 일곱이었다. 먼저 정당 여섯 칸을 세우고 서재 세 칸을 부설하였으니, 임신(1992)년 가을에 짓기 시작하여 갑술(1994)년 가을에 완공하여 작년에 이르기까지 우리 자손들이 추모의 정을 극진히 했다.
  근래 종중 원로들이 모여서 종중의 발전 방안을 논의하던 차에 광모재를 일 리쯤 뒤로 옮겨 지을 것을 결정했다. 을미(2015)년에 후손 백영씨가 산 아래 토지를 매입했고, 정유(2017)년에 후손 종만씨가 사업계획을 수립했으며, 기해(2019)년에 후손 동일씨가 관청의 허가를 받았다. 그리고 제가 신축(2021)년 여름에 착공하여 임인(2022)년 가을에 준공했다. 뛰어난 목수인 이천의 서창규가 좋은 재목으로 지었는데, 들보가 여섯이고 시렁이 여덟이다. 먼저 정당 일곱 칸을 짓고 이어 용헌관 삼층 건물을 광모재 동쪽 아래쪽에 지었다. 일층은 식당이고 이층은 관리사와 숙소이며, 삼층은 후손들의 숙소이다. 광모재 상량문은 후손 기동씨가 짓고 편액은 구액을 그대로 쓰니 전체의 규모와 미관이 모두 근사하다. 지금부터는 여러 자손이 성의와 힘을 다해 함께 지키고 잘 보호하며 받들고 사모하는 마음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종중에서 의론하여 저에게 기문을 지으라고 하기에 대략 이같이 적어 고하는 바이다.
 
        단기 4355년 임인 8월 상순 후손 기석 삼가 쓰다.
   


廣慕齋 起工祝文

維歲次檀君紀元四千三百五拾四年 辛丑四月庚辰朔二十二日辛巳
固城李氏容軒公宗中 會長 李 基 錫 敢昭告于
土地之神 今爲吉辰 固城李氏東碩十九代祖考 議政府 左議政
容軒公府君 營建齋宮 後裔祭席 敬存之誠
孝睦之風 伏惟 先山之下 名區選定 此地起工
聖神嚴臨 分付號令 呵噤 始終安全 不勝懇望 謹以

淸酒脯果 用伸 虔告謹告
後孫 道羲 謹書



定礎 祝文

천체우주가 쉼 없이 돌고 돌아 어느덧 신축년 임오월 임인일입니다.
서기 이천 이십일 년 시월 스무하룻날에 이르니 천하의 곡물은 스스로 익어 땅으로 내리고 인간의 업보는 저절로 여물어 그 기쁨을 거두는바,
 바람은 잦아들고 물결은 잔잔해지는 이 좋은 때에 대한민국 광주시 목동 산114-1번지
기슭에 천복의 땅을 빌어 좌의정 양헌공의 광모재 제각을 짓는 대사에 용헌공 19대손
회장 이기석 이하 제관 일동은 겸허한 마음으로 삼가 천지신명께 고하나이다.
옛날부터 명당을 찾던 것은 몸을 깨끗이 하고자 함이요, 날짜를 가리던 것은 마음을 정갈히 하고자 함이니,
이 터를 가려 광모재를 짓되 내 땅이라 만용하지 않을 것이오며, 오늘을 정하여 위탁하되 우리만의 집이라 욕심내지 않을 것이오니, 이에 정답고 다정한 이웃과 후손들을 청하였나이다,
서로 미소를 주고받는 덕담이 신명께 드리는 소박한 기원이요, 함께 나누는 한 잔의 맑은 술이 세상에 미치는 감사의 몸짓이오니, 오늘의 이 작은 정성을 사랑스레 여겨주옵소서.

인간의 경직함을 일찍이 깨달아 신명을 의지하옵나니, 이를 분수 밖의 과욕이 아니라 미리 스스로 경계하여 겸손코자 함이니,
아름답고 찬란한 헛된 말로 보지 마시고 그 속에 감추어진 진심을 보아 주옵시고.길을 잃어 힘겨워하는 새를 한 번도 쫓아내지 않는 천년의 숲처럼 사나운 바람은 막아주시고 거친 눈비는 덮어주옵소서,
本 대하(大廈) 7칸(間) 광모재 신축 대사에 줄탁동시(茁啄同時) 정신으로宗親의 밀어주는 줄(茁)과 宗賢의 당겨주는 탁(啄)을 합(合)하는 고성이씨 후손들과 본 제전(祭殿)을 짓고 다듬는 이천서씨 서창규 도편수를 신명의 천수천안(千手千眼)으로 어루만져 주시어 제전 광모재에 평화의 온기가 곱게 번져가게 하옵시고,
인간이 자신의 할 일을 진력껏 다 한 뒤에도 하늘의 뜻을 구원받으려 하는 것은 고금의 본성이기에, 오늘 깊이 삼가고 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축원을 올리오니, 이 연약한 고유자(告由者)의 목소리를 작지 않은 울림으로 크게 받으시어,
오늘 이 좋은 광모재 자리에 부디 빛나는 천지신명의 보우(保佑)를 내려 주시어 고성이씨의 최고의 전당이 되게 하여 주소서,
이에 삼가 공경한 마음으로 간소한 주과포혜를 올리오니 흠향하여 주옵소서.

행촌문화원 상임이사 사암공 32세손 이 기 호 찬(撰)



廣慕齋 立柱式 祝文

천지신명님의 깊으신 보살핌으로 우리의 힘찬 발걸음을 ​한발
두발 내딛게 되었습니다.
미약한 후손 하나하나의 힘을 모아 지금의 멋진 터전을 이루었나이다.
경기도 광주시 목동 산114-1번지, 광모재 터에 새롭게 자리
잡으신 천지신명이시여!
그동안 우리 문중에 내린 아담한 마을에서의 허울의 텃세를 모두 물리쳐 주소서.​ 허가, 토목, 민원 발생, 설계 변동 등에서 있었던
고통의 눈물도 모두 거두어 주소서
이제!
힘찬 기초 위에 듬직한 초석 앉히고 우리 고성이씨용헌종중의
"혼"의 기둥을 세웠음을 천지신명께 고하나이다.
경기도 광주시 목동 산114-1번지에 자리하신 천지신명님께
우리의 훌륭한 식구 한분 한분을 힘찬 박수와 갈채로 소개합니다.
우리의 대목 서창규 도편수님!
전현찬 대목장님, 이종석 목수님, 배경규 목수님, 이훈섭 목수님, 임진우 목수님, 김광현 목수님, 주경호 목수님, 최지준 목수님, 우리 고성이씨용헌종중 후손들과 그 외 참여한 모든 분들 이제 진정 우리 고성이씨의 식구임을 천지신명께 고하였나이다.

천지신명이시여!
우리 모두의 작품의 혼으로
우리 모두의 불후의 명작으로
우리 모두에게 흐뭇함을 주시옵소서!

            단기 사천삼백오십오년 이월 경신날
              공사 총감독 후손 위형 고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