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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 순수의 의미를 일러주신 은사님[고 피천득 교수]/ 이성호 (31세, 도촌)/ 2008.5.31>
  글쓴이 : 용헌공파종중 날짜 : 08-06-02 01:19     조회 : 4542    

수필

순수의 의미를 일러주신 은사님
 
                                              이 성호 (한양대 명예교수, 전 부총장)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옆 골목 왼쪽 모퉁이에 작은 일식점이 있다. 소위 가께 우동 집이다. 세종문화회관 저녁 프로그램 시간에 맞추려는 사람들로 늘 붐비는 곳이다. 나는 광화문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나갔다가 아주 오래간만에 이곳을 들르게 되었다. 오후 햇살이 밝지만 날씨는 아직 쌀쌀했다.

점심시간이 지나서인지 손님이 없다. 나는 무심코 창가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서두를 일도 없어서 우동을 주문하고 생각 없이 주위를 둘러보다가 옛 기억 하나를 문득 되살리게 되었다.

아주 오래된 일이다. 혼자서 주문한 우동을 기다리고 계신 피천득 은사님을 바로 이 자리에서 우연히 뵙게 되었던 것이다. 인사를 드리고 마주 앉았다. 늘 그러하듯이 간결하게 말씀을 건네신다. 시간에 맞추어 음악회에 가려던 참이셨다고 하신다. 집사람에 대한 안부도 잊지 않으신다. 우리 결혼식에 참석하신 감사의 뜻으로 우리가  함께 찾아뵌 일이 있다. 이런 선생님의 자상함은 늘 우리의 마음을 가라앉힌다. 식사를 끝내고 나는 선생님을 회관 입구까지 모셨다. 선생님은 멀리서 기다리고 계신 어떤 분을 향해 종종걸음을 옮기셨다.

얼마 지나서 피 선생님을 다시 만나 뵙게 되었다. 조선일보사 앞 큰길에서였다. 인사를 드리자 선생님은 반갑게 “이번엔 내 차례네,”라고 얼른 말씀하신다. 지난 번 우연히 받으신 우동 대접을 염두에 두신 말씀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딜 가고 싶으셨는데 혼자가시기도 그렇던 참에 같이 갈 사람을 만나서 반갑다는 말씀인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주저할 것도 없이 우리는 코리아나 호텔 이층 다방으로 올라갔다. 비엔나 커피 두 잔을 주문하신다. 커피에는 아이스크림이 들어 있고 잔 받침에서는 뽀얀 스팀이 피어오른다. 그 이름이 이국적이고 분위기가 근사했다. 나는 그 후 언젠가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선생님 생각도 나고 해서 이런 브랜드 커피를 찾아보았으나 허사였다. 

어느 졸업생 자제분 결혼식에서 선생님을 뵙게 되었다. 하도 오래간만이라 “선생님, 저 아무개입니다. 안녕하셨지요?”라고 인사를 드렸다. 뜻밖에도 칼칼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꾸하신다. “내 자네 이름을 잊었을까봐 그렇게 인사를 하나?” 선생님이 팔순을 훨씬 넘으셨을 때의 일이니, 짐작하건데 기억력이 쇠잔한 노인 취급을 해서 섭섭하셨다는 말도 되지만, 반대로 그런 반어법을 써서 반가움을 나타내셨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두 번째 해석이 맞을성싶다. 지나놓고 보니 나도 오랜만에 나이든 제자를 만나면 그 반가움을 그렇게 표현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은가.

선생님 댁에 세배를 다니던 때의 일이다. 세배를 드리고 나니 책상 위에 나란히 세워놓은 크리스마스카드 중에서 하나를 고르신다. 그 해에 받으신 카드 중에서 가장 좋아하시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나에게 건네신다. 어린 소녀가 누구를 기다리는 듯 허리를 굽혀 벽난로 속 굴뚝을 들여다보는 그림이었다. 산타크로스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회상이 이어지던 이쯤에서 주문한 가께 우동이 나왔다. 우동에는 고춧가루를 쳐야 제격이다. 따끈한 국물을 사기 숟가락으로 떠 마시고 그리고 굵은 국수발을 후루루 마시듯 먹는다. 담백하다. 단무지 한 조각을 ㅅ십고 다시 국수를 먹으면 맛이 새롭다. 그런데 나도 모르겠다. 그동안 길게 뻗은 과거라는 나무 가지가 휘어져 내 가슴 속을 찌른다. 독차지한 작은 공간의 아늑함 때문인지 담백한 우동 때문인지 모르겠다.

나는 선생님 덕분에 많은 시를 읽을 수 있었다.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대학원 과정까지 합치면 적어도 7학기는 선생님에게서 영미시를 배우지 않았나 생각한다. 보통 그러하듯이 그때 읽은 낭만주의 시부터 시작하여 빅토리아조 시를 거쳐 현대시에 이르는 많은 영국 미국 시들이 머리 속을 스친다. 서구의 낯선 시구들은 호기심에 차 있던 당시 젊은 우리들에겐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가령, 블레이크 William Blake의 시를 읽으며 어리둥절해하는 우리들에게, ‘청순’과 ‘어린 아이’를 간결하게 연결지으시던 선생님이 생각난다. 워즈워스 William Wordsworth와 콜리지 Samuel Tailor Coleridge의 시를 구분하며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늙은 뱃사람’ The Ancient Mariner를 읽으면서 ‘일상’과 ‘환상’의 시적 소재를 대비해주신 간결함 덕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라일락꽃을/ 죽은 땅에서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활기 없는 뿌리를 일깨운다." April is the crue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이 인용은 엘리엇 T. S. Eliot의 '황무지' The Waste Land 맨 앞부분이지만, 예를 들면, 여기서 “가장 잔인한 달”을 설명하기란 그리 만만치 않다. 종교, 신화 등등이 뒤얽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는 그 다의성 때문에 종종 분석적으로 걸러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갖고 있다. 그러나 선생님은 고뇌하는 시 속 화자의 ‘변화의 거절’ 또는 ‘생중 사의 탄식’과 같은 입장을 간결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짚어주신다. 단순화의 마력이다. 그리고 일상어를 말끔한 시어로 바꾸어놓는 프로스트 Robert Frost와 같은 미국 시인을 좋아하신 것도, 가령 문명과 같은 속박에서 벗어난 또는 그런 속박 이전의 참된 마음을 사랑하시기 때문이 아니었을 가 짐작해본다.

사실 시의 생동감은 음독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액센트 언어인 영어 시는 그렇다. 그러나 우리말 같이 액센트가 없는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영시의 적절한 음독, 가령, 약강격의 iambic 시행을 운율에 맞추어 읽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되돌아보면, 우리들도 리듬이 있는 음독보다는 내용 파악에 주력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런 작업을 종종 짊어져야 하는 우리들에게는 큰 부담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학기엔가 머리를 단정히 빗고 까만 옷을 차려 입은 한 여교수님이 이 강의를 청강하셨다. 그럴 때면 선생님은 운율에 맞춰 모범 낭독을 하시고 간단명료하게 그 의미를 설명하여 주셨다. 그분은 두 서너 학기 청강을 하시다가 그만 두셨는데, 섭섭해 한 사람은 우리들이었다.

선생님은 ‘수필’이라는 수필을 포함해서 적지 않은 산문을 쓰셨다. 이 빈칸을 채워가는 글에서조차 선생님은 말갛게 들여다보이는 간결한 글을 보여주셨다. 선생님의 수필 ‘오월’의 일부이다: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순한 얼굴이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서 무엇 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물론 선생님은 빈칸을 넓혀가는 운문으로 그 단아함을 보여주셨다. ‘장수 長壽’이다 “회갑 지난/ 제자들이 찾아와 대학생 웃음을 웃는다/ 내 목소리가 예전같이 낭랑하다고/ 책은 헐어서 정들고/ 사람은 늙어서 오래 사느니.” 대학생 웃음이 순수함으로 다가오는 이 시구를 나는 가끔씩 흉내 내보고 웃을 때가 있다. 고인이 되시어 이제 곧 오월이 되면 서거 일주기를 맞이하게 되지만, 선생님이 일러주신 이러한 ‘순수’와 ‘간결’의 의미를 많은 제자들이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우동 집에서 보낸 오후 시간이 생각보다 그렇게 오래 지나지는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그동안 지난 긴 여정을 부분적으로 되돌아보면서 선생님을 만나 뵐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큰 가죽 책가방을 늘 들고 다니시던 선생님도 뵈었다. 생생한 만남이었다. 나는 지난 연초에 두 딸에게 선생님의 시집을 각각 선물한 일이 있다. 딸들이 무었을 어떻게 느꼈는지 오늘은 이야기를 나누어보아야겠다.
 바깥 날씨는 여전히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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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수필은 이성호 교수(31세, 도촌)가 은사인 고 금아 피천득 교수를 추모하면서 쓴 것이다. 이성호 교수는 영문학자로 한양대학교 부총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양대 명예교수로 강의 중이다.

[자료 정리: 용헌공파종중 홈페이지 관리위원회]
[필자의 승인을 받아 게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