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이씨팔회당문중 계훈문(固城李氏八懷堂門中 戒訓文)

응수에게(寄應秀)

편지를 보고 너희의 자고 먹는 일이 편하고 좋다는 것을 알았으니, 기쁨과 안도의 마음을 헤아릴 수 없다. 나는 적은 녹봉에 얽매여 있어서 크게는 나의 참된 본성을 함양할 수 없으며, 다음으로는 너희에게 학문의 보탬을 주지 못하고 너희를 챙겨서 지도해주지도 못한다. 마치 농부가 밭 갈고 김매고 수확하면서 모두 제때를 놓치는 것과 같으니, 어찌 가을이 오기를 바랄 수 있겠느냐! 대저 사람이 금수와 다른 까닭은 사람에게 예의가 있기 때문이다. 예의의 도를 아는 것은 학문에 있고, 학문의 도에는 격물(格物: 사물의 이치를 궁구함)․치지(致知: 지식을 이룸)․성의(誠意: 뜻을 정성스럽게 함)․정심(正心: 마음을 바르게 함)의 공부가 있다. 하지만 너희는 처음에는 격물․치지․성의․정심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니, 모름지기 먼저 의대(衣帶)를 잘 갖추고 말을 신중히 하며 뜻한 학업을 열심히 하고 즐기려는 욕심을 절제해야 한다. 공부를 할 때 이른바 유자(儒者)의 학문을 추구하면, 반드시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님을 공경하며 임금께 충성하고 어른께 공손히 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분에 속하는 일임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격물․치지하여 자신의 착함을 밝히고, 성의․정심하여 자신의 몸을 수양하게 된다. 그 이후부터는 무한히 좋은 광경이 펼쳐질 것이니, 너희는 무엇을 꺼려 이것을 하지 않겠느냐! 근세에 인재를 뽑는 데는 단지 과거(科擧) 한 길만이 있을 뿐이니, 우리 동국(東國)의 선현들 대부분이 이 길을 통해 출세했다. 선비된 자는 진실로 분수에 따라 과거에 응시하여 가문의 바람에 부응하는 일을 해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정신을 집중하여 자신이 잘하는 바를 오로지 닦음으로써 한 가지 일이라도 일찍 완수하길 추구해야지, 하릴없이 세월만 보내면서 이것도 저것도 이루지 못하는 결과가 되어서는 결코 안 되느니라.

見書知眠食安吉, 欣慰不可量. 吾爲斗祿所縻, 大則不能涵養吾眞性, 次則使汝輩失學益無拘檢. 如農者之耕耘收穫, 皆失其時, 其可望有秋乎. 大抵人之所以異於禽獸, 以其有禮義也. 知禮義之道, 在於學問, 學問之道, 有格致誠正之工. 而汝輩初不知格致誠正之爲何樣物事, 須先從飭衣帶, 謹言語, 勤志業, 節嗜慾. 上做工夫, 求其所謂儒者之學, 則必當知孝親敬兄忠君悌長爲吾人本分內事也. 於是乎, 格致以明其善, 誠正以修其身. 自此以往, 有無限好光景, 汝輩何憚而不爲是乎. 至於近世取人, 只有科擧一條路, 我東先賢多從此路發身. 爲士者固不害隨分應擧, 以副家庭之望. 亦聚精會神, 專治所長, 以求其早了一事, 決不可悠泛度日, 爲彼此不及之歸也.

조카 진수에게(寄從子進秀)

네가 길을 떠난 다음날 새벽부터 날씨가 좋지 않았는데, 서쪽으로 향하는 여로에 곤란이나 겪지 않았는지 모르겠구나. 일생에 행하는 일은 처음에 이미 판가름 난다. 출입할 때 반드시 일찍 일어나 의관을 정제하며, 말을 삼가고 어른을 공경하며, 교제를 신중히 하고 실없는 말로 희롱하지 말며, 손님으로서의 절도를 알고 난 연후에 비로소 학업을 청하고 배움을 더 구할 수 있다. 이것은 이 늙은이가 너에게 기대하는 바이니 정말로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發程厥明, 風日不佳, 向西行色, 無撓得抵否. 一生行事, 已判於初. 出入必須早起冠服, 謹言語, 敬長者, 愼交遊, 毋謔浪, 知爲客節度, 然後始可以請業求益. 此老父所以期待汝者, 千萬勿泛.

손자들에게(示諸孫)

천 리 밖에서 너희가 직접 쓴 편지를 보니 비록 글자는 똑바르지 않고 문장도 간혹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지만, 여러 번 펼쳐서 읽다보니 너희의 얼굴을 보고 너희의 말을 듣는 듯하다. 차가운 방에서 얇은 옷을 입고 고생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너희와 내 이불을 함께 덮거나 너희에게 내 밥을 나눠줄 수 없으니, 이것이 내가 아침저녁으로 한스러워하는 바이다. 하지만 옛날의 이름난 현인과 이치에 통달한 선비는 굶주림과 추위의 곤궁한 처지 가운데서 특출하게 빼어나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니, 항상 질병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뜻을 연마하고 품행을 닦아 자신이 능치 못하는 바를 보충하여 채웠다. 만약 추울 때 입을 것을 생각하고 굶주릴 때 먹을 것을 생각하면서 책을 덮고 읽지 않거나 문을 닫고 드러누워 있다면, 본성이 날마다 깎여나가고 욕정이 날마다 타오르게 된다. 그 폐단은 사사로운 감정으로 공공의 대의를 해치고 하고자 하는 바를 도리라고 여겨, 부모님을 섬기되 부모님이 기뻐하지 않고 형제와 거처하되 형제 사이에 원망이 많으며, 부부가 서로 반목하고 친구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길 부끄러워하니,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그래서 학문은 뜻을 세우는 것을 귀히 여기고 그 도(道)는 수신(修身)하는 데 있으니, 한 때의 굶주림과 추위는 근심하기에 부족하다. 너희는 이것에 힘써야 하느니라.

千里見汝輩手書, 雖字不楷正, 文或斷續, 然數回展看, 猶似見汝面而聽汝言也. 房冷衣薄, 喫苦可念, 而地遠不能共我衾而分我飯, 是我朝夕之恨也. 然古之名賢達士, 未有不由飢寒窮困中拔出來, 以其恒存疢疾, 勵志飭行, 增益其所不能也. 若寒思衣, 飢思食, 掩卷而不讀, 閉戶而偃臥, 則性日鑿而情日熾. 其弊也, 以私滅公, 認欲爲理, 事父母而父母不悅, 處兄弟而兄弟多怨, 夫妻反目, 朋友恥肩, 可不戒哉. 是以學貴立志, 道在修身, 一時飢寒, 不足恤也. 汝等勉之.

○ 저자: 대계 이주정(大溪 李周楨: 1750~1813) ○

○ 출처: 대계선생문집(大溪先生文集), 권지이(卷之二) ○

○ 번역: 김장환(金長煥), 연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2006. 8. 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