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으로 떠가던 길이다. 1968년 2월 3일 착공해 9월 19일 완공된, 국내 최초의 아현고가도로다. 1967년 서울시가 건설부에 '서울시 고가고속도로 건설사업계획'을 제출하면서 싹이 텄고, 당시 서울시장이 외국 시찰에서 보고 온 걸 아현동에 처음 적용한 것이다.
▲ 공사 중인 아현고가도로(1968)?지하철 충정로 역에서 아현동 고개 정。 부근까지 943m로 떠간 아현고가도로의 공사 모습. 고가도로 옆 학교에서 촬영되었다. 오른쪽 위로 '서울제일침례교회'가 보인다.
ⓒ 서울역사박물관
여러 자료에서 확인되듯, 당시 김현옥 시장은 '싸우면서 건설하자'를 표어로 삼았다. 삽부터 뜨고 보는 엄청난 속도전이다. 보이면 먼저 착수부터 했다. 거침이 없었다. 공사가 진행되는 속도를, 시청 예산이 뒤쫓아가기 바빴다.
단 몇 개월 만에 완공된 아현고가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든 게 국민소득 30불 시대의 열망이었는지 모른다. 이듬해 8월 청계고가라는 거대한 공중 도로가 신화처럼 착공한다. 치밀한 계획과 설계보다, 속도전이 탄생시킨 연이은 결과물들이다.
▲ 서소문고가차도 개통(1966.06.25)?서울시청에서 서소문으로 들어, 경의선 철길을 건너는 서소문고가차도의 개통 당시 모습.
ⓒ 서울역사박물관
아현고가가 엄밀히 최초는 아니다. 올해 5월 철거하다 무너진 서소문고가차도(1966)가 시초다. 둘 다 어딘가 건너는 구조물이긴 하지만, 서소문의 그건 도로라기보다 철길을 건너는 교량(길이 493m 폭 15m, 4차선)에 가깝다. 오로지 경의선만 건넌다. 교통시설 간 교행을 회피하려는 아주 단순한 해법이다.
아현고가도로(길이 943m, 폭 14m, 왕복 4차선)는 달랐다. 시설물을 건너겠다는 구조물이 아니다. 서소문고가차도 교통 흐름을 아현동 언덕 위까지 끊기지 않게 잇겠다는 발상이다. 아현교차로를 거치지 않음은 물론 급경사를 손쉽게 오르겠다는 의도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요지는 이 성공이, 고가도로 전성시대를 열어젖혔다는 사실이다.
고가도로
고가도로는 순전히 차량만의 공간이다. 신호등 없는, 오직 효율만 추구하는 교통시설이다. 1990년대까지 곳곳에 건설된 배경이다. 위치와 기능 등이 아현고가도로와 비슷했던 서울 도심의 고가도로 몇을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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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서대문고가도로(1971)'가 있었다. 돈의문 터와 충정로 언덕을 이었다. 서대문 사거리의 교통신호를 회피하려는 구조물이다. 2014년, 아현고가도로와 함께 철거되었다.
남대문시장에서 명동을 잇던 '회현고가도로(1977)'도 유명했다. 대형 백화。과 남산 3호 터널이 이루는 교차로를 건너려는 목적이다. 3호 터널에서 시청과 명동으로 갈라지는 교통흐름을 방해하지 않고자 했다. 2010년 철거하고 보니, 한국은행 주변까지 밝아졌다.
▲ 공사 중인 미아삼거리고가도로(1978.03.20)?오른쪽으로 옛 '서울북공고(현 서울도시과학기술고등학교)'가 보이고 종암로를 따라 고가도로가 공사 중이다. 사진 왼쪽 옛 미아로(현 동소문로)방향으로 교각이 박혀 있다.
ⓒ 서울역사박물관
수유리 향하는 간선도로 둘이 미아리에서 합쳐진다. 동소문로(당시 미아로)와 종암로가 도봉로에 합류, 자연스럽게 삼거리가 되었다. 지금은 월계로를 확장해 미아사거리라 부른다. 합류 교통의 혼잡도를 줄이자는 목적으로, 미아로와 종암로에서 도봉로에 닿는 삼발이 모양 고가도로를 설치했다. '미아삼거리고가도로(1978)'다. 2004년에 철거된다.
가장 재미있는 게 '삼각지고가도로'다. 대중가요에도 등장하는 삼각지 로터리다. 이태원로와 백범로가 한강대로와 교차하는 사거리다. 옆으로 경부선이 지난다. 1968년 사거리에 둥그런 모양의 고가가 먼저 앉는다.
경부선을 건너는 고가차도가 1974년 설치된다. 건너자마자 떨어뜨리자니 뭔가 옹색하다. 사거리까지 끌고 와 둥근 고가도로에 이어 붙인다. 사방에서 차들이 신호 없이 올라타서 빙글 돌아, 가고 싶은 곳으로 내려갔다. 요즘의 회전 교차로(Round-About)와 유사했다.
▲ 삼각지고가도로(1974.07.02)?삼각지 사거리 위로 고가도로가 둥글고, 멀리 경부선을 건너는 고가차도는 곧다. 경부선을 건너는 고가차도가 완공된 무렵이다.
ⓒ 서울역사박물관
한미할 때는 무척 효율적이었으나 곧 지체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다. 뉴스에서 단골로 꼬집었다. 1994년, 경부선을 건너는 2차선 고가차도만 남기고 둥근 고가는 철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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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통지옥이어서다. 남은 고가차도 역시 현재 교통지옥이다. 2029년 철거하고 철길 아래로 4차선 지하차도를 개설할 예정이라 한다.
아현고가도로 철거
저마다 이유로 설치되었고,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유사한 이유로 철거되었다. 2003년 청계고가 철거가 전환.이었다. 청계천 복원(?)과 함께다. 안전 문제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적되어왔다. 환경과 경관, 물흐름 및 생태계 복원, 도시 재생 등 치솟는 시민적 요구가 철거 배경이었음도 주지의 사실이다.
▲ 아현역 주변?고가도로가 철거되어 환해진 서울지하철 2호선 아현역 주변. 오른쪽 뒤엔 철거재개발(북아현 뉴타운 1구역)로 높이 솟은 아파트 모습이 보인다.
ⓒ 이영천
아현고가도로는 그로부터 11년 후인 2014년에서야 철거된다. 격세지감이다. 편리와 속도를 앞세워 도시를 활보하던 최초 고가도로 아니던가. 앞서 살펴본 다른 고가도로보다도 늦었다. 1년 후, 정원길로 단장해 재활용된 서울역 고가도로와도 비교되는 지.이다.
2000년대에 들어 아현고가 주변이 급격히 슬럼화한다. 아현역을 중심으로 경관을 해친다는 민원이 비등한다. 경관에 더하여 교통을 저해하는 원인으로 고가도로가 지목되기도 한다. 안전은 물론이다. 객관화한 철거 여론이다.
▲ 아현고가도로 개통(1968.09.19)?충정로에서 아현동 고개 쪽으로 바라 본 모습. 연출된 듯한 차량 행렬에, 왼쪽으로 기념 사진을 찍는 이의 모습이 마치 그 시대처럼 아슬아슬하다.
ⓒ 서울시청
2011년에서야 정밀안전진단이 이뤄진다. 결과는 '조속한 보수가 필요한 C등급'이다. 서울시는 매년 소요될 막대한 보수비용을 염려한다. 안전이 아니었다. 여론이 들끓는다. 명분은 충분히 쌓였다. 보수 후 재활용보다, 노후화에 따른 사회 비용이 더 크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된다. 3년 후에야 철거 결정이 이뤄진다.
한때 아현고가를 일상으로 지나다녔다. 다른 곳에 비해, 여긴 뭔가 조금 달랐다. 나름 정겨운 풍경이 있었다. 지금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지만, 예전 고가 옆 교회 첨탑들이 참 예뻤다. 주변 풍경과도 잘 어울렸다. 언덕 위론 집들이 올망졸망했다.
▲ 아현고가도로(2009)?뉴타운 개발 직전의 고가도로와 올망졸망한 당시 아현동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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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위로 1999년 준공된 아파트가 마치 벽처럼 서 있다.
ⓒ 서울역사박물관
아픈 이면도 있었다. 지하철역을 중심으로, 고가도로 밑이 그늘져 있었다. 고가 옆 북쪽은 웨딩 거리였다. 길 건너엔 을씨년스러운 술집들이 넝마처럼 늘어져 있었다. 무척이나 이질적인 둘은 서로 외면하며 지냈다. 고가도로가 차단막이었다. 그런 세월이 46년이다.
아쉬움
고가도로 철거보다 재개발이 먼저 찾아왔다. 온 나라를 욕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은 '뉴타운(new-town)' 열풍이다. 남쪽 아현뉴타운(아현, 염리, 공덕, 대흥) 중 아현동이 2010년경 헐려 나간다. 골목이 사라지고, 정겹던 풍경이 말끔히 쓸려나갔다. 그리고 어디에나 있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 고가도로 흔적?충정로 부근 삼거리 종근당 앞에, 흔적으로 남은 옛 아현고가도로의 교각 3개.
ⓒ 이영천
2014년, 고가도로가 철거되자 그늘이 걷히고 햇살이 비친다. 변화의 실마리자, 신호탄이었다. 남은 공간의 표정이 환해졌다. 웨딩은 산업 쇠퇴 및 지대(地代)와 맞물려 다른 업종으로 분화, 대체되었다. 술집은 변화의 압력에 빠르게 밀려났다. 비로소 접.이 생겨난 셈이다.
이는 곧 재생을 의미했다. 회복이자 골목 살리기였다. 그러나 양상은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고가도로가 사라지니, 땅값이 상승했다. 그러자 숨죽이던 욕망이 고개를 쳐들었다. 급격히 밀려든 개발 압력에, 잠자고 있던 재개발이 꿈틀거렸다.
북아현뉴타운(북아현, 충현)이 되살아난 것이다. 끈질긴 생명력이다. 마치 고가도로 철거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뉴타운 1구역이 순차적으로 재개발된다. 아직 철거되지 않은 북아현 2구역과 3구역은, 언제 헐릴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처지에 놓여있다.
▲ 아현동 언덕?고가도로의 종.이던, 아현동 언덕에서 바라 본 신촌로. 양쪽으로 옛 공간은 살아 남아 변신 중이다.
ⓒ 이영천
상업지역 이어서였을까? 큰길가 옛 공간은 그나마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뒤쪽 정겹던 올망졸망한 풍경은, 이제 기억에만 남았다. 못내 아쉬운 부분이다. 양쪽 언덕 위 아파트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 고가가 사라진 길의 표정은 그럼에도 무척 밝다.
정녕 복원과 재생은 불가능했을까. 낡은 고가를 허물어 시민에게 해안가 풍경을 돌려주었다는 뉴욕의 '웨스트사이드 하이웨이(West Side Highway)'가 생각난다.
너엔 을씨년스러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