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강경민 펭윙스] 한때 멸종 직전까지 몰렸던 아무르호랑이와 극동표범이 러시아 극동의 숲에서 다시 늘어나고 있다. 숫자만 보면 이 이야기는 이미 해피엔딩처럼 보인다. 하지만 러시아가 지금 마주한 질문은 '몇 마리가 남았는지'가 아니라 '그 숫자가 진짜 회복을 의미하느냐'다. 보호지역 안과 밖에서 살아남는 확률이 다르고, 개체수가 늘어도 유전자는 여전히 취약하며, 국경을 넘나드는 개체를 추적하는 일까지 아직 남은 숙제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멸종 직전까지 몰렸던 아무르호랑이와 극동표범이 러시아 극동의 숲에서 다시 늘어나고 있다. (사진 아무르호랑이센터 홈페이지. amur-tiger.ru)/강경민 펭윙스
한반도에서 '범'으로 불렸던 러시아 극동에 남은 아무르호랑이와 극동표범은 지금 어디에서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그 답을 찾으려면 러시아 극동의 숲으로 시선을 옮겨야 한다. 이곳에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대형 고양잇과 동물인 시베리아호랑이, 즉 아무르호랑이와 극동표범이 함께 서식한다.
이곳의 아무르호랑이는 2021~2022년 전수조사에서 새끼를 포함해 751~787마리로 집계됐다. 극동표범은 2000년대 초 30~35마리 수준까지 줄었지만 2024년 발표 자료에서는 러시아 보호지역의 성체만 129마리가 확인됐다.
이들을 둘러싼 보전 논의는 오랫동안 '얼마나 남았는가'라는 질문에 집중됐다. 그러나 개체수의 회복이 확인되면서 질문은 '늘어난 개체가 어디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가'로 옮겨가고 있다. 특히 극동표범에게는 절멸을 피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숲으로 퍼져 안정적인 번식집단을 이루는 일이 핵심 과제가 됐다.
이런 회복은 한 기관이나 단일 정책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연방정부와 지방정부, 국립공원과 자연보호구, 대학과 연구기관, 야생동물 감독기관, 종별 보전을 전문으로 하는 비영리단체가 각자의 역할을 맡는다. 관리원은 밀렵을 단속하고, 연구자는 카메라트랩으로 개체의 생존과 이동을 추적하며, 전문가는 생활권으로 내려온 호랑이를 구조하고, 행정기관은 숲과 먹이동물을 관리한다. 이 역할들이 맞물리며 두 동물을 지탱하는 다층적 보호망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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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 750마리, 러시아의 목표는 '더 많이'보다 '안정적으로'
러시아에서 아무르호랑이 개체수를 판단하는 기준은 2021~2022년 겨울 실시된 전수조사다. 당시 연해주에서는 550~563마리, 하바롭스크주에서는 180~200마리가 확인됐다. 유대인자치주와 아무르주까지 포함한 러시아 전체 추정치는 751~787마리였다. 이 가운데 새끼가 200~210마리였다. 러시아 내 서식 범위는 약 20만6000㎢에 이른다. 이에 앞서 2004~2005년 조사에서는 423~502마리, 2014~2015년 조사에서는 523~540마리가 집계됐다. 물론 조사방식이 조금씩 보완돼왔기 때문에 숫자만 단순 비교하는 데에는 주의가 필요하지만, 장기적인 증가 흐름 자체는 확인이 가능하다.
러시아연방 법의 테두리에서 현재의 보전정책도 이를 반영한다. 국가 주도 차원에서 목표는 계속 숫자를 늘리는 데만 있지 않다. 러시아 정부는 2034년까지 700마리 이상의 생존 가능한 개체군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전수조사가 없는 해에는 카메라트랩과 눈 위 발자국, 개체 흔적을 이용해 변화를 추적한다.
아무르호랑이센터가 2026년 8월 발표한 자료를 보면 라조프스키 자연보호구와 '호랑이의 부름' 국립공원 일대에서는 4년에 걸쳐 약 60만 장의 사진이 촬영됐다. 이 가운데 7,881장에 호랑이가 찍혔다. 이 지역의 카메라 모니터링은 2008년부터 이어져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진의 숫자 자체가 아니다. 같은 숲을 장기간 관찰함으로써 어떤 개체가 살아남았는지, 새로운 개체가 들어왔는지, 새끼가 태어났는지를 추적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30마리 남았던 표범, 과거의 숲으로 돌아가는 길
극동표범은 러시아 야생동물 보전에서 가장 극적인 회복 사례 가운데 하나다. 2000년대 초 러시아에서 극동표범은 약 30~35마리 수준까지 감소했던 것으로 추정됐다. 이후 핵심 서식지 보호와 밀렵 단속, 장기간 카메라트랩 모니터링이 이어졌다. 2024년 '표범의 땅' 관리기관이 발표한 자료에서는 성체 129마리가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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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자료를 별도의 통계모형으로 분석한 연구에서도 116마리가 개체별로 확인됐고 전체 개체군은 약 118마리로 추정됐다. 조사범위와 계산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두 숫자를 직접 이어 붙일 수는 없지만 두 조사 모두 장기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 표범의 땅 국립공원 홈페이지. leopard-land.ru)/강경민 펭윙스
보전의 목표도 달라지고 있다. 이제 러시아는 '표범의 땅'에 남아 있는 표범을 지키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거 서식지에 새로운 개체군을 만드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3년부터 일부 극동표범을 우수리 자연보호구로 옮기기 시작했고, 2025년 말 두 번째 이주가 이뤄졌다. 2026년 7월 이 지역에서는 두 쌍의 표범이 확인됐다. 한 쌍은 사람이 옮겨준 수컷과 스스로 이 지역까지 이동한 암컷이었고, 다른 한 쌍은 둘 다 이주 개체였다. 이 지역은 극동표범이 반세기 이상 자취를 감췄던 역사적 서식지다. 아직 독립적인 번식집단이 만들어졌다고 판단할 수는 없지만, 보전의 방향이 '남아 있는 개체를 지킨다'에서 '사라진 서식지로 다시 확장한다'로 이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숫자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다...보호지역 내 호랑이가 더 오래 살아남았다
개체수가 늘었다는 사실만으로는 회복의 질을 알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연구도 있다. 보호지역이 실제 호랑이의 삶을 얼마나 바꾸는지를 보여주는 연구다. 2026년 《Global Ecology and Conservation》에 발표된 연구는 중앙 시호테알린산맥의 8,322㎢를 조사했다. 당시 연구진은 504개 지。에 카메라트랩을 설치해 보호지역과 벌목·사냥 등이 허용되는 다목적 이용지역의 호랑이를 비교했다.
보호지역을 주로 이용한 암컷 호랑이의 연간 생존율 추정치는 0.90, 다목적 이용지역에서는 0.51이었다. 새끼를 동반한 암컷도 보호지역에서 더 자주 관찰됐다. 연구지역에서 확인된 도로망만 7,828㎞에 달했다. 벌목 차량의 이동이 많은 지역에서는 같은 호랑이가 다음 해 다시 확인될 가능성도 크게 떨어졌다.
이 결과를 '보호지역에 들어가기만 하면 호랑이가 안전하다'고 단순화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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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자체가 관찰자료를 이용한 것이고 여러 환경요인이 동시에 작용한다. 그럼에도 보호지역과 인간 활동이 많은 지역에서 나타난 차이는 분명한 시사.을 준다. 호랑이를 보호한다는 것은 호랑이 한 마리의 몸만 지키는 일이 아니다. 넓은 행동권을 유지할 숲, 멧돼지와 사슴 같은 먹이동물, 번식할 수 있는 공간까지 함께 남겨둬야 한다.
한국에서 읽는 호랑이의 DNA...숫자보다 중요한 '연결성'
숫자만으로 안심할 수 없다는 사실은 유전자 연구에서도 확인된다. 아무르호랑이를 둘러싼 보호와 연구는 한국에서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2024년 국제학술지 『Scientific Reports』에는 남서 연해주 아무르호랑이의 유전적 다양성을 분석한 한-러 공동연구가 발표됐다.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과 국립생물자원관, 한국범보전기금 등 한국 측 연구진과 러시아 '표범의 땅'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연구진은 2014~2019년 러시아에서 확보한 비침습 시료를 이용해 32마리의 호랑이를 식별했다. 러시아에서 추출한 DNA는 정식 절차를 거쳐 한국으로 옮겨졌고 서울대학교에서 분석됐다. 연구 결과 남서 연해주 개체군에서는 과거 개체수가 크게 줄었던 흔적과 낮은 미토콘드리아 유전적 변이가 확인됐다.
이 연구는 '호랑이가 많아졌다고 해서 그 개체군이 곧 건강해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남서 연해주의 호랑이는 숫자 면에서는 회복하고 있지만 주요 개체군과의 이동이 충분하지 않으면 장기적으로 유전적 다양성이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오늘날의 보전은 '몇 마리가 있는가'에서 '서로 얼마나 연결돼 있는가'로 관심을 넓히고 있다. 도로와 도시, 농경지로 단절된 숲 사이에 생태통로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국가기관과 비영리조직이 함께 지키는 호랑이와 표범
이런 회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촘촘한 관리 구조다. 러시아의 야생동물 보호에서 국립공원과 자연보호구는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이다. 극동표범의 핵심 서식지에는 '표범의 땅' 국립공원과 케드로바야파디 자연보호구가 있다. 아무르호랑이 주요 서식지에는 시호테알린 생물권 자연보호구, 비킨 국립공원, 라조프스키 자연보호구와 '호랑이의 부름' 국립공원 등이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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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호랑이는 보호지역의 행정 경계 안에서만 살아가지 않는다. 현재 보호지역이 차지하는 면적은 전체 아무르호랑이 서식 범위의 약 20%다. 다시 말해 상당수의 호랑이는 수렵과 임업 등 인간의 토지 이용이 허용된 공간에서도 살아간다. 호랑이 보전이 국립공원을 지정하는 것으로 끝날 수 없는 이유다. 보호지역 밖에서 먹이동물을 유지하고, 불법 사냥과 벌목을 단속하며, 사람과 호랑이의 충돌에 대응하는 일까지 하나의 보전체계 안에 들어간다. 이 구조에서 러시아 천연자원환경부는 희귀종 정책을 총괄한다. 지방정부와 자연보호기관은 현장을 관리하고, 러시아과학아카데미(РАН) 산하 연구기관은 조사와 복원사업에 참여 중이다.
비영리 영역에서는 아무르호랑이센터를 비롯해 극동표범과 눈표범을 각각 전문적으로 다루는 국내 조직들이 활동하고 있다. 2026년에는 아무르호랑이센터와 비영리조직 '극동표범', 이르비스 협회가 희귀 대형 고양잇과 동물 보호를 위한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개별 종 중심으로 축적해온 경험을 공유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2025년에는 '대통령 환경·자연보호 프로젝트 기금'도 출범했다. 2026년 공모에서는 희귀종과 서식지 보호를 비롯한 157개 사업에 모두 10억 루블이 배정됐다. 보호의 재원이 국가기관의 직접 사업에만 머무르지 않고 보호지역과 비영리조직의 프로젝트로도 흘러가는 구조다.
사람이 그은 국경을 넘나드는 호랑이와 표범
이 보호망은 러시아 국경 안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연해주 남서부의 산림은 중국 동북부와 이어져 있고, 호랑이와 표범은 실제로 국경을 넘는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를 하나의 초국경 생태계로 관리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중국 동북호표국가공원. hubaogy.cn/pc)강경민 펭윙스.
2024년 두 나라는 러시아의 '표범의 땅'과 중국 동북호표국가공원을 연결하는 초국경 보호구 체계를 마련했다. 이후 양국이 카메라트랩 자료를 교환하면서 국경을 오간 같은 동물을 서로 다른 두 마리로 잘못 셀 위험도 줄었다. 2026년 첫 공동평가에서는 초국경 보호지역에서 성체와 새끼를 합쳐 223마리의 극동표범이 확인됐다. 러시아 측에서 135마리, 중국 측에서 115마리가 촬영됐지만, 이 가운데 27마리는 양국 카메라에 모두 나타난 동일 개체여서 한 번씩만 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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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방식으로 확인한 남서부 아무르호랑이는 147마리였고, 이 가운데 21마리는 양국 카메라에 모두 찍혔다.
야생동물에게 국경선은 지도 위에 있는 단순한 선일 뿐이다. 그래서 보호지역을 잇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느 표범이 러시아에서 중국으로 이동했고 다시 돌아왔는지 알기 위해서는 데이터까지 국경을 넘어야 한다.
인간의 달력보다 긴 동물의 시간
아무르호랑이와 극동표범의 회복은 한 해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오늘날 숲을 걷는 성체 호랑이는 몇 년 전 태어난 새끼이다. 그 새끼가 살아남으려면 어미가 번식할 수 있는 영역이 있어야 했고, 그보다 먼저 사슴과 멧돼지가 살아갈 숲이 남아 있어야 했다. 밀렵을 단속하고 산불을 막으며 야생동물이 이동할 통로를 지키는 일의 효과도 오랜 시간 쌓여야 비로소 개체군 변화로 나타난다. 극동표범이 세 자릿수 개체군으로 회복하는 데에는 20여 년이 걸렸다. 아무르호랑이 역시 수십 년에 걸친 보호와 조사 위에서 현재의 개체수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회복했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졌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아무르호랑이 서식지 대부분은 보호지역 밖에 있고, 도로와 벌목, 먹이자원의 변화가 계속 영향을 미친다. 남서 연해주에서는 개체군 사이의 유전적 연결성이 여전히 과제다. 극동표범의 경우 새롭게 진출한 지역에서 실제 번식집단이 만들어질 수 있는지를 지켜봐야 한다. 러시아 극동에서 호랑이와 표범을 지키는 주체는 결국 하나의 기관이나 정책이 아니다. 현장의 보호지역에서 국경 너머의 연구기관까지 여러 층의 보호망이 동시에 움직인다.
그 보호망이 실제로 작동하는지는 야생동물의 삶이 먼저 보여줄 것이다. 다음 조사에서 다시 확인되는 암컷과 새끼, 새로운 숲으로 향하는 발자국, 국경 양쪽의 카메라에 포착되는 같은 표범이 회복의 다음 장을 기록해 갈 것이다. 새로 자리 잡은 개체가 짝을 만나고 그 새끼가 다시 제 영역을 찾아 나서기까지는 인간이 세운 계획표보다 긴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시간을 재촉하지 않고 이동과 번식의 길을 지켜주는 것이다. 겨울마다 이어지는 발자국 조사와 2031~2032년 전수조사는 지금의 증가가 일시적 반등인지 지속 가능한 회복인지를 보여줄 것이다. 그때 러시아 극동의 눈 위에 어떤 발자국이 남아 있을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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