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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서(書)’ 책방지기 임인자는 지난 5월 ‘제1회 지혜의 빛, 김동수상’을 받았다. 1980년 5월27일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계엄군이 쏜 총탄에 맞아 숨진 시민군 열사 김동수를 기리는 상이다. 한 문단 분량의 선정 이유엔 “사회‘적 약자의 편에서 불의에 맞서온” “예술이 시대의 고통과 약자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실천” “국가폭력의 진상규명과 피해자 구제 활동에 헌신” 같은 문구가 들었다. 광주정신 실천을 김동수상 수상 최근 광주비엔날레 ‘국가관’ 명칭 삭제 논란 불거지자 앞장 서 주최 측 관료화·보수화 비판 ‘대만관’ 살렸지만 책방에 중국 손님 발길 ‘뚝’ 2000년대 초 서울 변방연극제 활동부터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와의 연대, 박근혜 정부 예술계 블랙리스트 투쟁, 김천문화예술회관 성악도 박송희 사망 사건 관련 공공극장안전대책촉구연극인모임, 광주 연극계 성폭행 사건, 5·18 성폭행 피해자와의 연대, 계엄 이후 5·18민주광장 책읽기 모임 운영 등 임인자의 일관된 실천 행보를 돌이켜보면 이 문구들은 헌사가 아니라, 사실의 기술이란 걸 알 수 있다. 최근엔 광주비엔날레 측이 ‘대만’ 이름을 지운 ‘대만관 파빌리온 명칭 삭제’ 사건을 두고 비판에 앞장섰다. 지난달 28일 실천 거。인 광주 충장로의 소년의서에서 책방지기이자 예술가, 활동가, 문화기획자인 그를 만났다. ☞ 기획·연재 | 만나듣다 https://www.khan.co.kr/series/articles/as430 중심인물 동호와 어머니다. 책방 안엔 광주정신의 국제적 실천과 연대를 보여주는 팔레스타인 국기도 놓였다. 지난달 28일 광주 충장로 소년의서에서 촬영했다. 광주 | 김종목 기자"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9/07/khan/11192thnp.jpg" data-org-width="1200" dmcf-mid="tiSpDg2uvX"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07/khan/11192thnp.jpg" width="658"> ‘소년의서’ 책방지기 임인자는 “5·18민주화운동 때 도청을 사수하던 이들의 마지막 밤을 늘 생각한다”고 말한다. 젠더·국가 폭력 피해자와 연대하면서, 책방을 운영하면서 늘 그 마지막 밤 의미를 되새긴다. 창가 책꽂이 위 모자 인형 한 쌍은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 중심인물 동호와 어머니다. 책방 안엔 광주정신의 국제적 실천과 연대를 보여주는 팔레스타인 국기도 놓였다. 지난달 28일 광주 충장로 소년의서에서 촬영했다. 광주 | 김종목 기자 임인자는 실천을 끌어내는 자문자답부터 했다. “5·18민주화운동 때 도청을 사수하던 이들의 마지막 밤을 늘 생각해요. 죽을 걸 알면서도 지키려 했던 그 마음이 뭐였을까? 민주주의였을까, 시민 생명이었을까. 인간 존엄이라는 생각도 하고요.” 소년의서라는 책방 이름은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에서 영감을 얻었다. 소설 중심인물 소년 ‘동호’도 5월27일 새벽 계엄군의 최종 진압에 맞서 도청에 남았다가 희생된다. “남성과 성인 중심의 5·18민주화운동 이야기들이 많은데, <소년이 온다>는 학생, 행방불명자, 여성 등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인물들을 깊이 들여다본 게 좋았다”고 한다. “변방의 책방서 내는 빛이 큰 목소리 될 것” 향후 대구에 실천·연대 거。 ‘소년의서’ 내길 희망 ‘마지막 밤’에 관한 성찰은 김동수상 수상 이유·책방 존재 이유와 연결된다. ‘광주정신’은 무엇인가, 어떤 사회를 이룰 것인가라는 질문과도 이어진다. “우리 모두 민주적으로 함께 공화정을 이루고, 평등하고 동등한 주체로 함께 결정하며, 서로 생각을 존중하며 함께 존엄을 지키는 사회”라고 했다. 그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늘 되새긴다. 광주정신을 두고는 “광주는 잘못된 권력에 저항해온 도시다. 그 정신은 잘못된 외압과 탄압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대만관 파빌리온 명칭 삭제’ 사건이 불거졌을 때도 바로 광주 문제라고 인식했다. 민주·인권·평화의 광주정신으로 설립한 광주비엔날레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관료화’ ‘보수화’ ‘기득권화’하면서 광주정신을 망각·역행하거나 박제화하곤 한다. 광주비엔날레는 지난 6월부터 국립대만미술관 파빌리온 명칭을 애초 ‘대만’ 대신 미술관 영문 약칭인 ‘NTMoFA’로 표기했다. 온·오프라인 홍보물에도 ‘NTMoFA’로 썼다. 임인자는 “동의없이 이름을 지우고, 선택적으로 명칭을 부여한 행위 자체가 검열이다. 국가관 이름을 지우는 행위는 광주비엔날레의 설립 취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모바일 온라인바다이야기 . “중국이다, 대만이다라는 국가 차원을 넘어 서로 질문하고 만나고 하는 예술의 장에 잘못된 억압과 탄압이 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떠올랐어요. 이 하나의 원칙과 본질만 생각해서 함께 싸워나갔어요.” 그는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 주제가 ‘경계를 넘어’였다. 민주·인권·평화의 정신이 예술을 통해 ‘경계를 넘어’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로 자리매김하는 데 역할을 해왔다고 믿는다”고도 했다. 광주 예술인들의 항의와 언론 보도가 이어지자 광주비엔날레 측은 8월25일 명칭을 본래의 ‘대만 파빌리온’으로 복구했다. 광주비엔날레는 ‘대만 파빌리온으로 명칭 사용 승인’이라는 표현을 썼다. “국가관이라는 개념 자체도 근대적인데, 그 이름을 두고 승인한다는 건 아주 잘못된 표현이죠. 굉장히 부끄러운 일을 감각하지 못하는 게 더 놀라웠고요.” 임인자는 광주 예술인 공동행동에 참여하면서도 소년의서 책방지기 이름으로 여러 차례 공개 글을 올렸다.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 윤범모에게 공개 항의글도 보냈다. “과거 정부의 부당한 압력에 사표를 표했던 이가 현재 광주비엔날레에 와서 하는 행위는 무엇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재 일어나는 광주비엔날레 국가관에 대한 선택적 국가 표기에 대해 아무런 사유도 성찰도 하고 계신지 않은지요?”라고 썼다. 이 사건은 중국 측 국가관 철수로 이어졌다. 임인자는 이 일을 두고도 “때로는 다름을 감각해나감으로써 우리의 인식의 지평을 넓혀가는 예술에 다른 무엇이 개입했다는 사실” 때문에 슬펐다고 한다. 주한 중국대사 다이빙과 주광주 중국총영사 구징치에게 보낸 공개 편지에서 “(전시 철수는) 중국 정부가 중국 예술가들에게 전시를 철수하도록 개입하고 압력을 넣으며 결국 검열과 탄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온 세계에 공표하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전남광주시는 중국 측이 철수하자 “‘하나의 중국’을 존중한다”는 내용의 입장을 냈다. 그는 2017년 초 여러 예술인과 함께 서울 광화문에서 71일간 진향한 ‘광장극장 블랙텐트’도 떠올렸다. “블랙리스트 싸움할 때 블랙텐트를 운영했어요. ‘빼앗긴 목소리를 여기 다시 세우다’를 내걸었죠. 어떤 방식으로든 예술활동을 하기 위해 노력한 겁니다. 작품을 보고 함께 논의하는 장(광주비엔날레)에서 작품을 철수하는 방식은 위협이자 통제로도 느껴졌습니다.” 임인자는 ‘대만관 명칭 삭제’ 문제 제기 이후 서。을 찾는 중국인 수가 급격히 줄었다고 했다. 소년의서는 외국인, 그중 중국인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소년이 온다> 외국어판도 여러 종류를 뒀다. 임인자는 지난해 대만에 공연하러 갔다가 대만판도 사 왔다. “중국인 손님들과 나누고 싶다는 뜻으로 사 왔죠. 중국인들도 대만 한자(번체자)를 상당 부분 읽을 수 있으니까요.” 대만판을 책방에 둔 게 중국인들 SNS에서 。。 전파됐다고 한다. “책방에 오신 중국인분들과 민주주의에 관해서 이야기도 많이 나눴죠.” 그는 “광주를 방문하는 많은 중국분들이 한강 작가의 여러 책이 번역됐지만 <소년이 온다>는 번역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검열의 흔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좀 놀랐는데 광주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고도 하더라고요. (중국 당국에서) 원치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죠.” 모바일 야마토2 릴게임 기관들이 광주정신을 거스른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4년 제15회 광주비엔날레 때 주최 측은 이스라엘관을 CDA 홀란재단이라는 이름으로 참여시켰다. 당시 이스라엘 대사가 강기정 광주시장과 접견까지 했다. “세계인이 참여하는 미술 축제인 광주비엔날레가 정치적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되죠. 이스라엘관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지우고 들어온 것도, 무기산업으로 번 돈으로 지은 한화퐁피두센터도 예술을 도구화하는 거죠.” 그는 “이 문제.을 알리는 포스터를 서。 앞에 붙여놓았다. 광주비엔날레를 하면 우리 서。에도 많이 오는데, 그 포스터가 있어서 그런지 또 많이 안 왔다”고 했다. 2013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벌어진 일도 전했다. “전당 예술극장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예술가들 작품 제목에서 5·18이 지워진 거죠.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고위 관계자에 의한 명백한 검열이었어요.” 2015년 광주비엔날레와 함께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개최한 5·18 관련 공연예술 워크숍 때도 “당시 전당장이 ‘반정부’적인 행사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전당 관계자로부터 전해 들었다. 5·18이 왜 반정부적이라는 것인가. 큰 고통으로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대만 파빌리온 포스터에 사라진 이름을 보면서 고통스럽게 느꼈다”고 했다. 목소리를 내면 작은 책방은 타격을 받는다. 그런데도 굽힐 생각은 없어 보였다. 임인자는 광주정신을 보편의 가치로 여기며 팔레스타인 문제 등에 연대한다. 지난 6월엔 ‘아시아의 오월을 잇다’ 프로그램의 하나로 ‘팔레스타인 그리고 광주, 이것은 。령이다. 갈등이 아니라’를 열었다. 지난달 27일에도 소년의서엔 시민과 예술인이 모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인상파, 찬란한 순간들’전(9월23일부터)을 논의했다. “인상파 그림들은 이스라엘의 미술관에서 대여해 온 것들입니다. 도대체 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이스라엘에서 임차해 와서까지 인상파 전시를 해야 하는 것이냐죠. ‘세금을 전쟁에 동원할 수 없다, 누군가의 학살에 세금을 투여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들을 나눴어요.” 중심인물 동호와 어머니 인형. 시민 정순임이 직접 만들어 ‘소년의서’에 선물했다. 광주 | 김종목 기자"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9/07/khan/13851bmpu.jpg" data-org-width="1200" dmcf-mid="b6GNztsACC"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07/khan/13851bmpu.jpg" width="658"> 책방은 이처럼 종종 일을 도모하는 긴급 현안 논의 자리가 된다. 광주정신을 실천하는 ‘작은 광장’이다. 저녁엔 북토크, 독서 모임, 지구농장터 등 여러 모임을 이어낸다. “성별, 나이, 성정체성, 지역이 다양한 분들이 와서 함께 섞여요. 대만관 명칭 삭제 문제 때도 여기서 다들 만났어요.” 책방 이름으로 연대 활동도 이어간다. 지난 6월엔 서울국제도서전의 공공성 회복을 촉구하는 출판인들이 연 대안 도서전인 제1회 ‘제대로 도서전’에 참여했다. 윤석열 탄핵집회 때는 5·18민주광장에서 ‘책을 읽으며 민주주의를 지키자’는 책읽기 모임을 계속 열었다 바다이야기모바일 . 임인자는 인천에서 태어나 1985년 광주로 왔다. “이방인이잖아요.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학교에서 5·18을 알려주지 않았어요. 5·18이 5월18일 하루인 줄 알았고, 심지어 전두환이 좋은 사람인 줄 알았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야 5·18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고 한다. 금남로와 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사람들이 5·18특별법 제정 등을 외치는 모습에 압도당했다. “어떤 사안이길래 이토록 사람들이 집중해서 이야기할까 이런 생각을 했죠. 대학에서 서양 연극사를 배우는 첫 번째 시간 교과서를 딱 펼쳤는데 거기 그리스 아고라광장 사진을 보면서 아, 광주 5·18민주광장이구나 했죠. 광주가 그리스 비극 여러 장면과 등치되기도 했고요.” 임인자는 고3 때 예술에 관심을 가졌다. 수업 열외 특혜를 받는다고 여긴 같은 반 무용단원들의 학교 축제 공연을 본 게 계기다. “너무 아름다워서 울었어요. 내가 공부하는 시간에 저 친구들은 저 아름다운 작품을 하기 위해서 몸을 단련하고 땀을 흘리면서 연습을 했구나 하는 생각에 또 막 울었어요.” 그는 “선입견과 고정화된 생각들을 경계하자고 다짐했다. 또 막연하지만 예술을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금남로에서 열린 연극제와 사진전, 민중미술전도 이 고교생을 흥분에 빠지게 한 예술이었다. 반골 기질이 강했다. 1995년 광주교대에 들어갔다. “입학식 때 총장이 ‘졸업하면 모두 선생님이 된 여러분을 우러러볼 것’이라는 말에 의문이 들었다. 적성에도 맞지 않아 때려치웠다”고 했다. 광주교대 다닐 때 연극 동아리 활동을 했다. 이듬해 중앙대 연극학과 연출 전공에 재수해 들어갔다. “세상 기존 질서를 거부하는 마음, 그 질서에 질문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고 말한다. 학부 때부터 극장 밖 연극에 관심을 둔 것도 이런 마음 때문이다. “극장 자체가 마치 학교 같은 제도 같았다. 어릴 때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5·18을 밖에서 배웠던 것처럼 극장을 벗어나 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고 했다. “극장은 어떤 의미에서는 돈을 주고, 즉 돈이 있어야 들어가 볼 수 있잖아요. 거리 연극엔 돈을 안 줘도 돼요. 누구든지 볼 수 있어요.” ‘극장 밖’ 공연 때는 늘 국가기관이나 지자체의 ‘허가’ 문제와 맞닥뜨린다. “‘예술이 이렇게 허가를 받고 해야 된다?’ 이런 질문을 했죠. 경계의 안과 밖이나 제도의 안과 밖, 합법과 불법 같은 걸 많이 생각했죠.” 검열과 승인, 허가 문제에 더 예민해졌다. 문화예술 지원의 안팎도 사유 대상이다. “예술은 계속 비용이 들어가요. 특히 순수예술은 흥행 규모나 이런 게 대중예술과 다르잖아요. 문화예술 중 공연예술은 자본주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비용에 질병이 생긴다고 해서 ‘비용 질병’이라고 해요. 윌리엄 보멀과 윌리엄 보엔이 기술한 비용 질병 개념이 예술 지원 근거가 되죠. 또 공공 지원 때 오래된 중요한 원칙 중 하나가 팔길이 원칙이죠.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거죠.” 이 팔길이 원칙이 박근혜 정부 때 깨졌다. “정부나 행정이 예술에 개입하고 심지어 검열하고 블랙리스트까지 만드는 초유의 일이 일어났잖아요. 윤석열 정부는 관심도 없었고요. 오히려 지원을 못하게 통폐합해버리죠. 이재명 정부는 뭘 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국립정동극장 이사장 장동직 등 인사를 두고는 “문화예술 기관을 누군가의 일자리로 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불쾌했다”고 말했다. 모바일 바다이야기 사이트 먹튀 임인자는 무대사고로 숨진 성악가 안영재의 죽음에 책임져야 할 서울오페라단 전 단장 박혜진이 국립오페라단장에 선임된 것을 여러 차례 비판했다. 2025년 4월4일 5·18민주광장에서 “책을 읽으며 민주주의를 지키자”라고 적은 현수막을 든 임인자(왼쪽)와 시민 이영빈. 소년의서 제공 늘 부조리와 불의를 예민하게 “감각”한다. “가난 때문에 늘 남과 다르다는 인식을 하면서,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 같은 게 생긴 것 같다. 내가 아닌 것들을 감각한다”고 했다. 이 감각의 대상은 주로 “폭력을 경험한 이들”이다. “고통으로만 머물게 하지 않고, 고통을 함께 나누고,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같이 만들어 가고 싶은 마음인 것 같아요.” 이런 마음과 공적 비판의식으로 싸운 게 성폭력 사건들이다. 광주연극계 성폭력 사건 해결대책위에서 활동도 했다. 이윤택 성폭력 사건 등 연극계 미투운동에도 앞장섰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 피해자 김지은의 북토크도 지난 5월 소년의서에서 열었다. 5·18 성폭력 피해자 단체인 ‘5·18 열매’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올해 오월미술제에선 ‘5·18 열매’와 예술가들이 함께한 ‘열매 예술 프로젝트’에도 들어갔다. 임인자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낭독하고 증언하는 행위로 한 작업 ‘우리가 당신의 증인이 되어’를 발표했다. 임인자는 연출가 시절 성폭력과 성차별 문제에 둔감했다고 한다. “연극을 전공할 때 여학생이라는 이유로 조명실에 들어가질 못했어요. 연출하려면 조명을 잘 알아야 하거든요. 미투 운동 때야 제가 경험한 게 성차별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저 역시 당시 폭력적인 예술 창작 환경을 방관해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같이 싸워야 한다고 마음먹었죠.” 임인자는 이번 형사소송법 개정에도 반대했다. “피해자 구제, 연대 활동을 하며 지역에서 여러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지역에선 경찰이 지역 카르텔 안에 있어요,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 입장에서 수사하는 사례, 수사를 하다가 (피의자가) 도망가는 사례, 변호사 입회를 하지 않도록 압력을 넣는 사례, CCTV가 미비하다며 수사를 방치하는 사례 등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아요. 검찰이 잘못됐다는 이유로, 민주당에서 추진해왔다는 이유로만 그렇게 개정하는 게 폭력입니다.” 임인자는 젠더폭력, 국가폭력 피해자들과 늘 연대했다. 2014년엔 형제복지원 피해 생존자·유가족·실종자 모임 총무를 지냈다. 한종선 등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들도 ‘소년’이었다. “보통은 소년이라고 하면 미성년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전 소년을 뭔가 규정되지 않은 존재로 이해한 것 같아요.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 존재가 의미 있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 존재를 오롯하게 이야기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한종선 증언을 담은 <살아남은 아이>를 더 팔고 싶은 마음도 2016년 소년의서를 연 이유 중 하나였다. (힐데와소피,2025) 북토크장면. 소년의서제공"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9/07/khan/16488bnyf.jpg" data-org-width="1200" dmcf-mid="9RsxXSgRTO"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07/khan/16488bnyf.jpg" width="658"> 골드몽릴게임 지난 3월 26일 작가 김지음 초청 <자본의 바깥>(힐데와소피,2025) 북토크장면. 소년의서제공 소년의서는 올해로 개업 만 10년이 됐다. 문을 열고 몇년은 먹고살기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책 이윤이 정말 작거든요. 한강 작가님 노벨 문학상 수상 전날엔 책이 딱 한 권 팔렸어요. 수상 뒤로 손님이 엄청나게 온 거예요. 작가님이 책방에 오시면 절하고 싶을 정도예요.” 작가, 편집자, 디자이너, 출판사, 인쇄사, 유통사, 배급사 그다음 책방에 이르기까지 독자를 만나려 거치는 과정을 확인하며 “삶에 겸손해졌다”고도 했다. “예술 생태계와 똑같이 출판계도 각자 건강하게 역할을 할 때 오롯하게 독자들까지 잘 전달되는 것 같아요.” 18년간에 걸친 대학원 학자금대출 상환도 지난 5월 끝냈다고도 한다. 책방은 열린 공간이다. 내부 곳곳에 소파도 뒀다. 임인자는 “번뇌의 소파”라며 웃으며 말했다. “일부러 책방을 왔는데, 물 한 잔 대접하듯 잠깐의 쉼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서 놔둔 거죠. 막상 여기서 앉아서 쉬고 책을 안 사 가면 또 번뇌가 시작되죠.” 임인자는 연출자 시절 공연 때면 극장 로비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곤 했다. “책방에서도 극장 로비에 있는 느낌도 들어요. 제가 여기 오롯하게 있고, 누군가 찾아와야 하잖아요. (현장에도 자주 찾아다니던 연출가 때와 달리) 몸을 바꾸는 과정도 있었죠.” 임인자 이름을 세상에 알린 건 변방연극제다. 2004년 이후 11년간 변방연극제를 기획했다. 권력과 자본에 억눌린 삶 이야기들을 무대에 올렸다. 그게 ‘변방의 역할’이라 믿었다. 지금 소년의서도 ‘변방’이라고 여긴다. “변방연극제 할 때도 ‘변방이 어떤 의미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저는 언제나 변방의 역할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했던 것 같아요. 이 세상은 중심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죠. 책방에서 내는 우리들의 빛들이 모여 큰 목소리가 될 거라고 믿어요.” 임인자는 ‘싸움꾼’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2017년 6월28일 블랙리스트 관련 재판에서 전 대통령비서실장 김기춘이 “(블랙리스트를) 지시한 적 없고, 알지 못한다”고 하자 “거짓말하지 마세요!”라고 거세게 소리치며 항의하다 법정에서 끌려나간 일도 있다. “블랙리스트를 자행하고도 그것이 국가 역할인 것처럼 이야기했을 때 그것이 폭력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투쟁의 언어가 아니라 절규였다”고 말했다. 그는 용기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내부 고발하고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했어요. 하지만 더 용기를 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김기춘 재판 때도 그렇고 다른 일들도 그렇고 그때그때 용기를 반드시 내 이야기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거든요.” 고등학교 시절 일화도 꺼냈다. “고등학교 때 야간 학습용 돈을 학교에서 거뒀어요. 가난해서 돈도 못 냈지만, 이상했어요. 수업 때 ‘선생님, 이거 너무 부당합니다’라고 따졌죠. 선생님이 ‘너 따라 나와’라고 해서 교무실에 끌려갔는데, 그 선생님께서 ‘너의 질문이 너무 타당하다. 맞는 말이다’라고 그 말씀만 하셨어요. 어떻게 보면 그때 용기 내도 된다는 걸 얻은 것 같아요.” 향후 계획도 용기를 내야 하는 일 같았다. 그는 “소년의서를 대구로 옮기고 싶다”고 말했다. 실천과 연대의 거.인 이 작은 광장을 대구로 확장하며 ‘광주정신’을 함께하고 싶다는 말로 들렸다. 임인자의 삶은 대구로 가더라도 바뀌지 않을 듯했다. “내가 날씨에 따라 변할 사람 같소.” 열사 김동수가 5·18 당시 주변의 피신 권유를 뿌리치며 한 말이다. 임인자는 김동수상 수상 소감에 이 말을 적었다. cdn.net/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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