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화는 아니지만, 적응된 운송체계를 통해 원유흐름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내용에 대한 설명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9/30/munhwa/14684upne.png" data-org-width="569" dmcf-mid="XIBbVRYCyw"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30/munhwa/14684upne.png" width="658">
<그림1> 정상화는 아니지만, 적응된 운송체계를 통해 원유흐름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내용에 대한 설명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프롤로그: 호르무즈에서 이상한 역전이 일어나고 있다
전쟁 초기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의 통항을 위협하면서 세계가 가장 우려했던 것은 원유의 흐름이 끊기는 것이었다. 실제로 선박 통항과 원유수송은 급감했고 국제유가는 급등했다. 이란은 미사일과 드론, 기뢰, 고속정 등 ‘현존위협(TIB)’을 이용해 압도적인 미 해군과 직접 맞서지 않고도 세계경제에 상당한 비용을 부과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역전이 나타나고 있다. 호르무즈의 자유항행은 아직 정상화되지 않았지만 원유의 흐름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셔틀 운송과 선박 간 환적(STS), 우회 파이프라인 등 새로운 운송체계가 작동하면서 걸프 산유국의 원유수출도 전쟁 이전 수준을 향해 회복되고 있다.
반면 정작 이란 자신의 원유수출은 미국의 해상봉쇄와 경제제재로 크게 위축되고 있다. 원유수출 감소는 외화수입과 정부재정을 압박하고 리알화 가치와 국민생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호르무즈의 역설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이란은 호르무즈를 통해 세계경제가 견딜 수 있는 시간을 줄이려 했지만 세계는 그 위험에 적응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세계의 원유는 다시 흐르는데 이란 경제는 오히려 더 어려워지고 있는가.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국방대 명예교수. 김태준 소장 제공
I. 호르무즈의 원유는 다시 흐르고 있는가
현재 호르무즈를 판단할 때 선박 통항과 원유의 흐름을 구분해야 한다. 상선 통항량은 아직 전쟁 이전 수준에 크게 못 미치고 보험료와 운임도 높은 수준이다. 선박 공격 위험 역시 남아 있다. 따라서 호르무즈의 자유항행이 정상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원유의 흐름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케플러(Kpler)의 9월 잠정자료에 따르면 호르무즈를 통한 원유 흐름은 하루 약 972만 배럴까지 늘어났다. 전쟁 이전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전쟁 이후 가장 뚜렷한 회복세다.
범위를 걸프와 중동 주요 산유국 전체로 넓히면 회복세는 더욱 분명하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이라크 등 주요 산유국의 9월 원유수출은 전쟁 이전의 약 80% 수준까지 회복된 것으로 추산된다. 호르무즈를 직접 통과하는 물량뿐 아니라 선박 간 환적(STS), 셔틀 운송, 푸자이라와 얀부 등 우회 수출로가 함께 작동한 결과다.
특히 셔틀 운송의 확대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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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만 안쪽에서 원유를 실은 선박이 위험구역을 통과한 뒤 오만만에서 대형 유조선(VLCC)으로 원유를 옮기는 방식이 확대되면서 대형 선박이 직접 호르무즈의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도 원유를 운송할 수 있게 됐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동서횡단 원유 파이프라인과 UAE의 푸자이라 수출로 역시 호르무즈 의존도를 분산시키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호르무즈는 정상화와 봉쇄라는 두 단어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상선의 자유로운 통항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지만 원유를 이동시키는 능력은 상당 부분 복원되고 있다. 물량의 회복이 곧 자유항행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은 분명해진다. 이란의 군사적 거부능력(Denial)이 여전히 존재하는데도 왜 원유의 흐름은 다시 늘어나고 있는가. 그 사이에 새롭게 등장한 변수가 바로 ‘적응(Adaptation)’이다.
미국 해양통제와 시장적응이 이란 거부능력의 효과를 감소시키는 것에 대한 설명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9/30/munhwa/17212lzyf.png" data-org-width="569" dmcf-mid="70FigwB3vL"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30/munhwa/17212lzyf.png" width="658">
<그림2>미국 해양통제와 시장적응이 이란 거부능력의 효과를 감소시키는 것에 대한 설명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II. 이란의 거부능력은 왜 원유 흐름을 막지 못하고 있는가
전쟁 초기 이란이 호르무즈를 위협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보다 강한 해군을 보유했기 때문이 아니다. 해안 미사일과 드론, 기뢰, 고속정, 잠수전력 등을 분산 운용하면서 언제든 상선을 공격하거나 항로를 위협할 수 있다는 현존위협(TIB)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해협을 완전히 장악하지 않고도 해운회사와 보험회사가 스스로 호르무즈를 위험한 바다로 판단하도록 만들 수 있었다.
이것이 거부능력(Denial)의 본질이다. ‘해양통제(Control)’가 자신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바다를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거부능력은 상대가 그 바다를 안전하고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능력이다. 이란은 미국의 해양통제를 빼앗기보다 그 통제의 비용을 높이는 전략을 선택했다.
전쟁 초기에는 이 전략이 효과를 거뒀다. 선박 통항이 급감하고 보험료와 운임이 상승했으며 국제유가도 크게 올랐다. 미국이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고 있어도 상선이 실제로 통과하지 않는다면 완전한 해양통제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적응(Adaptation)’이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미국은 기뢰 제거와 항행로 확보, 감시와 호위를 확대했고, 걸프 산유국과 해운업계는 I장에서 살펴본 새로운 운송체계를 발전시켰다. 이란이 위험을 높이면 시장은 이를 우회하거나 분산시키는 방법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이란의 군사적 거부능력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경제적 효과가 。차 분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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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은 여전히 호르무즈의 정상화를 방해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 위협이 과거와 같은 비율로 원유공급 감소와 유가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재 호르무즈에서는 세 가지 힘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미국은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해양통제(Control’)를 확대하고, 이란은 현존위협을 통해 ‘거부능력(Denial)’을 유지하며, 국제시장과 걸프 산유국은 양측의 충돌에 ‘적응(Adaptation)’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중요한 것은 이란이 얼마나 많은 미사일과 기뢰를 보유하고 있느냐만이 아니다. 그 위협이 실제로 얼마나 많은 원유를 멈추게 하고 세계경제에 어느 정도의 비용을 부과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거부능력이 남아 있어도 세계가 그 효과에 적응한다면 호르무즈가 이란에 제공하는 전략적·협상적 가치도 달라질 수 있다.
세계 원유수출 회복과 이란 원유수출 위축이라는 호르무즈의 역설에 대한 설명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9/30/munhwa/18515ladp.png" data-org-width="569" dmcf-mid="VdT4QL1yTx"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30/munhwa/18515ladp.png" width="658">
<그림3> 세계 원유수출 회복과 이란 원유수출 위축이라는 호르무즈의 역설에 대한 설명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III. 왜 세계의 원유는 흐르는데 이란의 원유는 막히는가
호르무즈의 역설은 여기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이란이 막으려 했던 걸프 산유국의 원유는 다시 세계시장으로 흐르고 있는데 정작 이란 자신의 원유수출은 크게 감소하고 있다. 세계가 이란의 거부능력에 적응하는 동안 미국은 이란의 원유수출을 겨냥한 해상봉쇄와 경제제재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전쟁 이전 이란은 미국의 오랜 경제제재에도 ‘그림자 선단(Shadow Fleet)’, 선박 간 환적(STS), 자동식별장치(AIS)를 끄는 다크 운항과 중개회사를 이용해 상당한 규모의 원유를 수출했다. 특히 중국은 이란산 원유의 핵심 시장이었다. 경제제재만으로 원유수출을 완전히 차단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번에는 경제제재와 물리적 해상봉쇄가 결합됐다. 미국은 이란 원유를 운송하는 선박과 거래기업, 금융망을 제재하는 동시에 원유가 이란 항만을 떠나 해외시장으로 운송되는 과정도 압박하고 있다. 제재(Sanctions)와 봉쇄(Blockade)가 하나의 경제적 압박수단으로 결합된 것이다.
그 결과 이란의 원유·콘덴세이트 선적량은 올해 3월 하루 약 200만 배럴에서 7월 약 74만 배럴, 8월에는 약 22만∼25만 배럴 수준까지 감소한 것으로 민간 선박추적기관들은 추산하고 있다. 이는 걸프 주요 산유국의 전체 원유수출이 전쟁 이전의 약 80% 수준까지 회복되고 있는 것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바로 이것이 ‘호르무즈의 역설(Hormuz Paradox)’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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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거부능력이 세계 원유의 흐름에 미치는 경제적 효과는 시장의 적응으로 약해지는 반면, 미국의 봉쇄와 제재는 이란 자신의 원유수출과 외화수입을 직접 압박하고 있다.
그 충격은 원유산업에서 끝나지 않는다. 원유수출 감소는 외화 유입과 정부재정을 압박하고 리알화 가치 하락과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식료품과 의약품, 주거비 부담이 커지고 실질소득이 감소하면 그 비용은 결국 국민생활로 이전된다. 미국의 경제적 압박이 국가의 외화계정에서 시민의 일상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이 곧바로 이란 체제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란은 오랜 제재에 적응해 왔고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바시지(Basij), 경찰 등 체제보위기관의 자원을 우선적으로 유지할 수도 있다. 국민의 경제적 고통과 체제의 생존능력은 구분해서 판단해야 한다.
그럼에도 전략적 변화는 분명하다. 이란은 호르무즈를 통해 미국과 세계경제가 감당해야 할 비용을 높이려 했지만 세계는 그 위험에 적응하고 있다. 반대로 미국의 봉쇄와 제재가 만들어내는 비용은 이란 내부에 축적되고 있다.
결국 이란이 세계경제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 사용했던 호르무즈라는 수단이 오히려 자신의 경제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경제적 압력이 이란 국민과 체제의 안정성에 어디까지 전달될 것인가이다.
생활고와 잠재적 불만의 증가는 체제에 대한 잠재적 위협이란 인식하에 이란이 협상장으로 움직였다는 설명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9/30/munhwa/19832ygxd.png" data-org-width="569" dmcf-mid="fQ4ISZiPhQ"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30/munhwa/19832ygxd.png" width="658">
<그림4> 생활고와 잠재적 불만의 증가는 체제에 대한 잠재적 위협이란 인식하에 이란이 협상장으로 움직였다는 설명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IV. 이란 국민은 조용한데 정권은 왜 협상장으로 움직이는가
경제적 고통이 심화되고 있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리알화 가치가 하락하고 식료품과 의약품, 주거비 부담이 커지고 있는데 왜 대규모 반정부 시위는 나타나지 않는가.
표면적인 정적을 체제에 대한 지지나 사회적 안정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생활고가 심해질수록 시민들은 오히려 정치적 행동보다 집세와 식료품, 의약품을 마련하고 일자리를 유지하는 생존문제에 집중할 수 있다. 여기에 과거 반정부 시위에 대한 강경진압의 기억과 혁명수비대(IRGC), 바시지(Basij), 경찰과 정보기관의 통제능력도 집단행동을 억제한다.
따라서 거리에서 시위가 보이지 않는다고 불만까지 사라졌다고 볼 수는 없다. 대나무가 땅 위로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 오랫동안 땅속에서 뿌리를 뻗듯 경제적 고통과 정치적 불만도 사회 내부에 축적될 수 있다.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은 불만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집단적 표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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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이러한 잠재적 불만이 언제 행동으로 전환되느냐이다. 경제적 불만에 급여·연금 지급 지연, 보조금 축소, 대규모 실업이나 정전, 상징적인 국가폭력과 같은 촉발요인(Trigger)이 결합하고 노동자와 상인, 학생 등 서로 다른 집단의 행동이 연결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이란의 경제적 임계。도 하나로 볼 수 없다. 국민이 정상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지는 ‘생활 임계.(Household Threshold)’, 정부가 공무원과 연금, 기본서비스와 전쟁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지는 ‘재정 임계.(Fiscal Threshold)’, 혁명수비대와 바시지, 경찰 등 체제보위기관의 충성과 응집력이 흔들리는 ‘체제보위 임계。(Regime-Security Threshold)’을 구분해야 한다.
현재 국민생활과 정부재정에 대한 압박은 커지고 있지만 체제보위기관의 조직적 이탈이나 대규모 명령 불복종이 나타났다는 뚜렷한 증거는 없다. 따라서 국민의 경제적 고통과 신정체제의 붕괴 가능성을 곧바로 연결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압박이 장기화할수록 이란 정부가 감당해야 할 비용은 커진다. 국민생활과 정부재정을 유지하면서 전쟁을 수행하고 체제 보위기관의 응집력까지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란이 미국에 7일 제안을 내놓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뒤에도 협상을 중단하지 않고 수정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생활고가 이란 정부의 협상행동을 직접 결정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경제적 압박이 커지는 상황에서 외교적 출구를 계속 찾고 있다는 사실은 이란 지도부의 시간 계산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란의 수정 제안 내용이 의미하는 것에 대한 설명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609/30/munhwa/21167xvdf.png" data-org-width="569" dmcf-mid="4po53brNlP"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9/30/munhwa/21167xvdf.png" width="658">
<그림5> 이란의 수정 제안 내용이 의미하는 것에 대한 설명도.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 AI 그림
V. 이란의 수정 제안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이란의 이른바 7일 제안은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다. 이란은 미국이 군사행동과 해상봉쇄를 중단하고 석유제재 완화와 동결자산 해제 등에 나설 경우 7일 안에 호르무즈의 정상적인 해상운항을 복구할 수 있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호르무즈의 재개방을 미국의 군사·경제적 압박 완화와 교환하려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제재완화나 동결자산 해제를 제안했다는 보도를 공개적으로 부인하면서 대이란 압박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에서 미국의 해상봉쇄와 경제제재라는 국가 차원의 압박수단과 이를 협상에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더 주목할 것은 첫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후의 이란이다. 이란은 협상을 중단하지 않고 중재국을 통한 접촉과 수정안 모색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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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을 이란의 굴복이나 패배로 해석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란 지도부가 여전히 협상을 통한 출구를 필요로 한다고 판단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는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란이 보유한 호르무즈라는 협상카드의 가치가 변하고 있다는 .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란의 군사적 거부능력은 남아 있지만 국제시장과 걸프 산유국의 ‘적응’이 진행되면서 세계 원유공급을 압박하는 효과는 전쟁 초기보다 약해지고 있다. 반면 미국의 해상봉쇄와 경제제재가 이란의 원유수출과 외화수입에 가하는 압박은 누적되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협상통제력(Bargaining Control)’이다. 군사적·경제적 수단을 보유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을 상대의 양보와 자신이 원하는 정치적 결과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란 역시 호르무즈의 거부능력을 유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미국의 봉쇄 해제와 제재 완화라는 성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러나 세계가 호르무즈의 위험에 적응할수록 이란의 거부능력이 갖는 협상가치는 낮아질 수 있다. 반대로 미국의 봉쇄와 제재가 이란 내부에 계속 비용을 축적한다면 이란으로서는 호르무즈라는 지렛대의 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협상에서 활용할 유인이 커진다.
그렇다고 시간이 일방적으로 미국에 유리한 것은 아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미국도 국제유가와 전쟁비용, 미군 피해 가능성, 국내 정치적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 이란이 미국의 정치적 시간을 압박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결국 지금의 협상은 호르무즈를 열 것인가 닫을 것인가만을 둘러싼 협상이 아니다. 미국은 군사적 우위와 해상봉쇄, 경제제재를 협상력으로 전환하려 하고, 이란은 호르무즈의 거부능력을 미국의 양보로 전환하려 한다. 양측 모두 자신이 가진 압박수단을 정치적 성과로 바꾸려는 협상통제력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란이 첫 제안을 거부당한 뒤에도 수정안을 모색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경쟁에서 주목해야 할 변화다. 이란의 패배를 의미하지는 않지만, 시간이 반드시 자신에게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판단이 이란 지도부 내부에서 커지고 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에필로그: 누구의 시간이 먼저 끝나는가
호르무즈의 역설은 전쟁의 승패를 판단하는 기준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란의 거부능력(Denial)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세계는 그 위험에 적응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해상봉쇄와 경제제재가 이란의 원유수출과 경제에 가하는 압박은 누적되고 있다. 군사적 능력의 보유보다 그것이 실제로 상대에게 얼마나 지속적인 비용을 부과하느냐가 중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어느 한쪽에만 유리한 것은 아니다. 이란은 원유수출 감소와 외화 부족, 국민생활 악화와 체제유지비용이라는 경제적·사회적 임계。을 견뎌야 한다. 미국 역시 전쟁비용과 미군 피해 가능성, 유가와 물가, 전쟁 장기화에 따른 국내 정치적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이러한 미국의 정치적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면서 이란의 경제적 시간을 더 압박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가 된다.
결국 호르무즈의 승부는 누가 더 많은 함정과 미사일을 보유했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누가 상대의 압박에 더 빨리 적응하고, 자신의 군사적·경제적 수단을 협상력으로 전환하며, 상대보다 오래 버틸 수 있느냐의 인내력 경쟁이다.
호르무즈에서 다시 흐르기 시작한 것은 원유만이 아니다. 시간도 다시 흐르고 있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그 시간이 트럼프 대통령과 이란 가운데 누구에게 먼저 임계。을 가져올 것인가.
김태준 한반도안보문제연구소장·국방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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